情(정) 이야기
심정(心情)이 착잡하다.
가만히 추정 해 보니 매정한 세상때문인 것 같다. 무정(無情)한 사람들을 바라보면 정(情)나미 떨어진다. 인정(人情)은 사라젔고, 박정(薄情)스러운 말로 타인을 공격하는 세태다. 왜 이렇게 냉정(冷情)할까. 왜 미운 情만 남았을까. 왜 이토록 심정(深情)이 비뚤어지고, 감정(感情)이 메말랐을까. 우리는 원래 이런 민족이 아니었다.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사람들이었다.
"여러분의 말은 언재나 정(情)답고 또 소금으로 맛을 낸 것 같아야 합니다."(콜로 4. 6)라는 성경 말씀을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해 오던 민족이었다. 특히 과거 순교자들은 정(情)이 넘쳐서 하느님의 복음을 세상에 나눴고, 목숨까지도 바쳤다.(1테살 2. 8참조)
조금만 눈을 돌리면 가슴 뭉클하게 하는 정(情)이 무수히 많다.
친구 사이의 우정(友情), 사랑하는 연인들의 애정(愛情), 민족과 나라를 향한 충정(忠情), 그리고 신뢰의 정(情), 흠모의 정(情), 석별의 정(情), 고운 정(情), 첫정(情), 풋정(情), 잔정(情), 말 그대로 다정(多情)하다. 이렇게 우리는 이미 가진 정(情)이 많다. 그 옛정(情)을 회복해야 한다.
어떻게? 가장 위대한 정(情)을 기억해 내면 쉬울지도 모른다. 정(情) 중의 정(情), 정의 최고봉은 역시 모정(母情)이 아닐까. 모정(母情)만큼 위대한 것이 또 있을까. 모정(母情)은 정의 고갈로 바짝 마르고 갈라진 우리 마음을 회복시킬 것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매정한 세상을 이겨낼 힘을 얻어낼 수 있다.
그런데 '뛰는 모정(母情)'위에 '나는 母情'이 있다. 카톨릭 신앙인들은 모정(母情) 중의 모정(母情)은 마리아의 母情이라고 고백한다.
거룩한 어머니(聖母)의 정(母情)을 생각하면 편안해 진다. 그 품에서 잠시만 머물렀을 뿐인데, 세상의 그 어떤 매정함도 무정(無情)함도, 박정(薄情)스러운 공격도 나를 흔들지 못할 듯 하다.
'망운지정(望雲之情)이라는 말이 있다. 구름을 바라보며 그리워 함. 즉 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믿는다. 타향살이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날, 천상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정(情)겹게 안아주실 것이다.
-우광호(라파엘.월간 가톨릭비타곤 편집장)
2017, 9, 3.
천주교 수원교구 "위로의 샘"에서
承 汎(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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