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뿌리의 고민"
"머나먼 저 곳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미국 플로리다 주 북부. 포스터의 노래에 등장하는 스와니(Suwannee River) 강 물줄기를 따라 볼드 사이프러스[bold cypress. 낙우송(落羽松)] 나무가 유난히 찬란한 자태를 뽐낸다. 주로 습 지대나 늪, 물 속에서 자라는 이 나무는 훤칠한 키에 아름드리 몸매, 시원스레 쭉 뻗은 가지, 은빛 햇살에 반짝이는 찰랑거리는 이파리가 매력적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무 주위에는 무릎모양의 뿔돌기가 곳곳에 죽순처럼 솟아있다. 이 괴상한 돌기의 정체는 'Knee'라고 불리는 볼드 사이프러스의 무릎뿌리(Cypress knee)이다. 언뜻 보기에는 어린 묘목 같기도 하고, 쓸모없는 기생 식물처럼 보인다. 호흡뿌리인 Knee는 나무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물속이나 늪에서 나무를 굳건하게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수 많은 무릎 뿌리의 도움으로 볼드 사이프러스는 거대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
"무릎뿌리는 꿈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멋진 사이프러스가 되고 싶었다. 성실하게 일하면 언잰가 나무가 될 줄 알았다. 매일 반복되는 산소를 나르는 일은 너무 평범해 점점 의미가 없고 실증이 낫다. 그래도 날마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려 햇빛을 받았다. 하지만 어느 날 자신은 묘목이 아니라 뿌리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키가 자랄 수 없음을 알고 깊은 고민과 실의에 빠졌다."
공동체에서 무릎뿌리 역할을 하는 사람은 산소같은 존재이다. 겸양의 옷을 입어 어리숙하고 초라해 보이지만, 늘 자질구레하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한다. 또 이웃의 어려운 형편을 섬세하게 살펴 남 몰레 도와준다. 그리고 공동체가 시련에 흔들릴 때 단단히 지탱하는 닻이 된다. 동료들을 격려하고 지지하며 묵묵히 공동체를 지킨다.
하지만 그들도 때때로 무릎뿌리와 같은 고민에 빠진다. 왠지 거룩해 보이는 일을 하는 봉사자와 자신을 비교한다. 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소한 일만 하는 것 같아 무력감을 느낀다. 설상가상으로 초라해져가는 자신의 모습에 위축되고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가끔씩 우울해진다.
그렇다면 무릎뿌리와 같은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먼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고, 각자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을 갖자.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평가에 스스로를 가두고, 자유를 옭아멘다. 덧붙여 작고 평범하지만 주어진 역할에 감사하는 마음은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 또한 같은 사명, 다른 공동체 구성원과 유익한 교류를 한다. 서로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하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더불어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한 공동체 안에서 상호 소통을 한다.
예를 들어 만약 무릎뿌리가 잎이나 가지를 시기해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나무는 숨이 막혀 썩어갈 것이다. 또 잎이나 가지가 자만해 무릎뿌리를 무시한다면 나무는 비바람에 뿌리가 송두리째 뽑힐 것이다.
그러므로 운명 공동체인 가지, 잎, 뿌리가 저마다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아낌없는 격려와 감사를 주고받으며, 손을 맞잡고 공동선을 향해 나가야한다.
우리는 주님 사랑 안에서 한몸인 공동체이다.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서 똑 같이 사랑받는 자녀이다. 그래서 주님 보시기에 동등한 가치의 역할을 각자 담당하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되어 나날이 개인 신앙의 성숙과 공동체의 화합을 위해 상생한다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될 조화롭고 튼튼한 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이다.
"오소서, 성령님! 시들어 메말라가는 열정에 생기를 부어주소서, 아멘"
서전복 안나(동양화가, 미술교육가)
2017, 7, 2.
천주교수원교구 "위로의 샘"에서
승 범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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