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샘

퇴계 이황의 유언(遺言)

승범(承汎) 2017. 1. 3. 15:02

                                                            퇴계 이황의 유언(遺言)

 

      성당에 다니는 모든 자매님은 꽃이다. 하느님의 충실한 종으로 살며, 성당 모든 궂은 일을 마다않는 자매님들을 볼 때 마다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성당마다 꽃이 만발하고 있으니 하느님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내가 만약  꽃 아르레기가 있었다면, 성당에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가는 성당마다 꽃밭이니 말이다.

나는 꽃이 좋다.

      그런데 꽃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꽃이 있다. 매화(梅花)다. 살을 칼로 배는 추위를 버틴 후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를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고통을 이겨내고 생명을 터뜨리는 그 여린 몸짓이 안쓰럽고, 대견하다.

      나처럼 매화에 푹 빠진 분이 계셨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의 매화 사랑은 남달랐다. 병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매화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였다. 또 평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해결 방법을 매화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 이황이 삶을 마감하는 날,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

그리고 누운 자리를 정돈하게 하고는 부축 받고 일어나 앉아서 편안히 운명했다.

 

      그렇다. 진리는 거창하지 않았다. 매화나무에 물을 주는 그 소소한 일상이 진리에 가깝다.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를 어떤 거창함에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느님이 주신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집에 와서 설거지를 할 수 있는가. 하느님께서 우리 대신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는가.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 설거지를 하시고, 운전을 하신다. 우리를 통해 매화나무를 살리신다. 그렇게 하느님은 우리의 일상을 통해 당신의 초월을 드러내신다.

 

      삶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주어진 일상이 귀중하지 않게 된다. 하느님께서 주신 일상이라고 생각하면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일분일초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이고 기적이다. 그 기적의 시간에 매화나무에 천천히 물을 주면 된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만나는 모든 일상을 정성으로 대한다면 풍요를 체험할 것이다.

      소유를 위해 매사에 전투적으로 대들 필요 없을 것 같다. 하느님께서는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배푸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넘쳐나게 받는다. 이것을 깨달으면 우리의 컵은 저절로 넘쳐 흘러서, 그 안에 든 것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에 이런 말이 있다. "다들 화롯가에 엿 놓고 왔는가. 이리 발바닥에 불나게 걷는 다고 무슨  

수가 생기는겨?"

2017년이다. 책상 위가 지저분하다. 책상 정리를 해야겠다.

 

                     - 우광호(라파엘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2017,  1,  1.

                                                               천주교수원교구 "위로의 샘"에서

                                                                                    承    汎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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