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범(承汎)마당

길을 묻다

승범(承汎) 2015. 2. 4. 23:25

                                                     길을 묻다

 

한 젊은이가 양치기 할아버지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아테네로 가는 중인데

해 저물 때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않고

그냥 처다보기만 합니다.

 

"할아버지, 해 저물기 전에

아테네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요?"

할아버지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해 저물기 전에 아테네에 갈 수 있는냐고 물었습니다."

세번째 물어도 반응이 없자

젊은이는 욕을 하고는 그냥 가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제서야 할아버지는 걸어가는 젊은이의 뒷 모습을 보고

입을 열엇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그런 걸음걸이로 가면

해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겠네!"

 

사람마다 걷는 속도는 다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젊은이의 걸음걸이를 확인한 다음에

정확한 대답을 알려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근대 서구 문명을 낳은 합리적 과학 정신입니다.

 

한양으로 가던 나그네가 밭에서 일 하던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한양까지 몇 리나 남았나요?"

"고개 넘어 십리만 더 가슈."

고개를 넘어 한참을 걸엇는데도

한양은 보이지 않앗습니다.

 

 

이번에는 밭에서 일 하던 아저씨에게 물엇습니다.

"아저씨, 한양까지 몇리나 남았나요?"

 

"고개 넘어 십리만 더 가슈."

나그네는 또 고개를 넘어 한참을 갔지만

한양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밭에서 일하던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한양 가려면 몇리나 더 가야 하나요?"

"고개 넘어 십 리만 더 가슈."

드디어 나그네는 짜증을 냈습니다.

고개 넘어 십리라고 하더니 또 십리에요?"

"어차피 갈 길인데

멀다고 하면 맥만 빠지지,

십 리쯤 남았다고 하면

기분도 좋고

기운도 날게 아닌가,"

 

숫자로 따지는 세계와

마음으로 재는 세계가 만나는

동양과 서양.

두 길을 통합하여 만드는 창조의 세계.

 

그곳에

다양한 빛이 모여

하나가 되는

무지개가 뜹니다.

                            2015,   1,   17.

                          이어령의 '짧은 이야기, 긴 생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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