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다
한 젊은이가 양치기 할아버지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아테네로 가는 중인데
해 저물 때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않고
그냥 처다보기만 합니다.
"할아버지, 해 저물기 전에
아테네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요?"
할아버지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해 저물기 전에 아테네에 갈 수 있는냐고 물었습니다."
세번째 물어도 반응이 없자
젊은이는 욕을 하고는 그냥 가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제서야 할아버지는 걸어가는 젊은이의 뒷 모습을 보고
입을 열엇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그런 걸음걸이로 가면
해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겠네!"
사람마다 걷는 속도는 다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젊은이의 걸음걸이를 확인한 다음에
정확한 대답을 알려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근대 서구 문명을 낳은 합리적 과학 정신입니다.
한양으로 가던 나그네가 밭에서 일 하던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한양까지 몇 리나 남았나요?"
"고개 넘어 십리만 더 가슈."
고개를 넘어 한참을 걸엇는데도
한양은 보이지 않앗습니다.
이번에는 밭에서 일 하던 아저씨에게 물엇습니다.
"아저씨, 한양까지 몇리나 남았나요?"
"고개 넘어 십리만 더 가슈."
나그네는 또 고개를 넘어 한참을 갔지만
한양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밭에서 일하던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한양 가려면 몇리나 더 가야 하나요?"
"고개 넘어 십 리만 더 가슈."
드디어 나그네는 짜증을 냈습니다.
고개 넘어 십리라고 하더니 또 십리에요?"
"어차피 갈 길인데
멀다고 하면 맥만 빠지지,
십 리쯤 남았다고 하면
기분도 좋고
기운도 날게 아닌가,"
숫자로 따지는 세계와
마음으로 재는 세계가 만나는
동양과 서양.
두 길을 통합하여 만드는 창조의 세계.
그곳에
다양한 빛이 모여
하나가 되는
무지개가 뜹니다.
2015, 1, 17.
이어령의 '짧은 이야기, 긴 생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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