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범(承汎)마당

사랑 노래에 사랑은 없다.

승범(承汎) 2013. 11. 14. 13:27

                                                                       사랑 노래에 사랑은 없다.

 

     언재부터인가 한국의 모임 문화에 자연스레 노래방 문화가 들어섰다. 1차로 저녁을 먹고 2차로 술자리에 간 후 대개 3차쯤 되면 노래방으로 가는게 순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술을 취하도록 마신 뒤에는 으례 노래방에 가서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다 오곤 한다.

     그런데 어느 날은 말짱한 정신으로 노래방 소파에 몸을 파 묻은 채 곰곰이 사람들의 노랫 소리에 귀를 기우린 적이 있었다. 그때 내 관심을 집중 시켰던 건 평소 자주 들어왔던 지인들의 노랫 소리가 아니라,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이었다. 하나같이 모든 가사가 사랑 타령이었던 것이다.

     백이면 백, 노래의 가사가 모조리 '사랑'을 담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으면 노랫말이 될 수 없는 결격 사유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좀 의아스러운 점을 발견했다.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가 모두 이별과 헤어짐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에서부터 '우리는 너무 쉽게 헤어졌으며' '갈테면 가라지' '그까짓 것 미련 때문에' '내곁에 있어 줘' '너 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아! 끝도 시작도 없는 사랑의 미로여' 등등 모든 가사의 내용이 하나같이 사람들이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는, 사랑의 이별을 노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사랑에 이별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라는 듯이, 거의 강요하다시피 모든 노래 가사가 사랑의 아름다운 이별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굳이 헤어질 이유가 없지 않는가.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해도, 어떻게 하나같이 모든 노래 가사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별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인가. 죽음이 두사람을 가른다 해도 영혼만은 떨어지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그러므로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별이란 단어는 없을 것이다.

     사랑이란 끝도 시작도 없는 사랑의 미로(迷路)가 아니다. 사랑이란 단순하며 정직해서 미로는 커녕 그 흔한 지름길도 없으며, 아주 멀리 돌아가야하는 우회로도 없다. 사랑이란'내'가 '너'에게로 가는 가장 단순하고 아름다운 길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구불구불 꺾인 곡선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이르고 나면 그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선으로 보일 것이다.

     사랑이 언재까지나 끝도 시작도 없는 미로라면 이는 사랑을 가장한 함정에 불과한 것이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내 곁에 있어달라고 애원하지 않아도 지겹도록 두 사람은 함께 있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요, 그리고 날 봐요,라고 애원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이들은 언재나 서로의 얼굴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는다.

 

     얼마 전 보았던 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이에게 이런 말을 하고 떠났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떠나는 거예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 말을 부정한다. 진정 사랑한다면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일생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이 아무리 지리멸멸한 일상 속에서 남루해진다 할지라도 끝끝내 사랑하는 이의 곁에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소박하고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겠는가.

     숱한 사랑 노래의 가사들처럼, 우리에게 아름다운 사랑이 이별을 겪고 난 후에 슬픈 추억으로 떠오르는 사랑뿐이라면 우리 인간들의 인연이란 얼마나 하찮고 쓸쓸할 것인가. 세상의 모든 노래들이 사랑보다 사랑의 아픔을 더 아름답게 노래한다면 그건 더이상 진실한 사랑노래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정작 우리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엔 사랑이 없다. 사랑은 지금 당신 곁에서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 속에 있다. 그 사람의 환한 미소속에 있다.

 

                                                                          2013,  11,   5

 

                                                                                        최인호의 '인연'에서

                                                                                                             해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