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러할 수 있는가?
지난 5월에 미국에 체류하면서 최인호의‘인생’이란 신간, 默想錄(작가 본인은 연작 소설이라 했다)을 읽었다. 감명 깊게 읽었다. 귀국해서 우연히 서점에 들렸더니 최인호의 할(喝)이란 소설이 나와 있었다. 목록을 읽어 봤더니 불교에 관한 얘기다. 경허, 수월, 혜원, 만공이란 선승에 관한 얘기였다. 인생이란 책은 1부는 카토릭 성서를 통한 묵상록이고 2부는 법정 스님을 통한 불교 얘기의 연작 소설이었다. 작가는 카토릭 신자다. 그래서 더 호기심이 생겼고 두권의 책이 연장선상에 있는 느낌이 들어 사서 읽었다. 그 첫 번째 경허(鏡虛) 스님 얘기다.
온 강산에 눈이 내린 어느 겨울날.
볼일로 산 아래 내려갔다가 돌아오던 그 무렵 해인사에서 방장으로 주석하던 경허는 눈 덮인 산길에서 이상한 광경 하나를 보게 된다. 당시 허경는 눈길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집신에 새끼를 칭칭 꼬아 묶은 뒤에 주장자를 들고 산길을 오르고 있었는데 길가 한섶에 뭔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다 싶어 다가가 물끄러미 들여다 보았더니 눈을 온통 뒤집어쓴 사람이었다. 경허는 무슨 일인가 눈발을 헤쳐 보았더니 남자도 아닌 여자의 모습이 드러나 보였다. 길을 지나다 눈발을 맞고 추위와 싸우다 지쳐 동사 직전에 놓여 있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길로 경허는 얼어 죽어가는 여인을 업어 메고 산길을 올랐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경허가 머무르던 조실은 오늘날에도 해인사에 남아있는 퇴설당. 경허는 그 여인을 업고 퇴설당 안으로 들어갔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모습을 본 사람은 단 한 사람 경허의 수법제자 만공 한 사람뿐이었다. 경허가 죽어가는 여인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여인은 죽음 직전에서 살아났다. 아마도 빳빳하게 얼어붙어버린 여인의 몸을 경허는 자신의 몸으로 녹이고 체온을 되살려주었을 것이다.
문재는 그 죽어가던 여인을 기사회생시킨 것에 있지 않았다. 여인이 되살아난 뒤부터 큰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인은 정상적이 아닌 정신이 돌아버린 미친 여인이었다. 아마도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저 마을에서 이 마을로 떠돌아 다니며 밥술이나 얻어먹는 거렁뱅이 광녀임이 분명했던 것이다. 비럭질 하는 도중에 눈을 만나 그만 산길에서 얼어 죽게 되었던 것을 지나던 경허가 우연히 보고 업어다 체온으로 녹여 살려준 겄이었다.
정신이 든 광녀는 자기가 좋아서 경허가 예뻐해 주는 줄만 알고 가지도 않고 그대로 방에서 자고 먹고 했다.
난처해진 것은 그의 제자 만공, 만공은 寺內의 대중들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문 밖에서 꼭 지키고 있다가 누가 조실스님인 경허를 만나러 오면 “스님께서 지금 주무십니다.”하고 물리거나 “스님께서 지금 아프십니다.”하고 막았으며 끼니때면 광녀분의 공양까지 방안에 들여놓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를 열흘이 지나자 만공은 더 이상 미봉할 수 없다고 결심했습니다. 만공은 때만 되면 문 밖에서 스승을 낮은 소리로 부르고 했다는 것이다.
“스님, 스님.”
그러면 안에서 열흘 이상 꼼짝도 않으면서 스승 경허의 같은 대답 소리만 들리곤 했다.
“누구냐?”
“접니다. 만공입니다.”
“무슨 일로……?”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 왔습니다.”
그러면 방 안에서는 한결 같은 대답 한소리뿐이었다.
“가거라. 내가 들을 말이 없다.”
번번이 물러섰던 만공은 열흘 이상 조실스님이 보이지 않자 이를 의아하게 생각해서 떼를 지어 퇴설당으로 문병차 찾아들 만큼 긴박한 사태가 벌어지자 하는 수 없이 만공은 다시 찾아가 조실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스님, 스님.”
그러나 안에서는 대답소리가 없었다. 한참 부르던 만공은 그래도 안에서 소리가 없자 궁금증이 일어 신발을 벗고 문을 열고 퇴설당 안으로 들어섰다.
堂宇안에는 뒤엉켜 있는 한 쌍의 남녀 모습이 보였다. 석양 무렵이라 어슴푸레한 저녁 빛으로 자세히 살필 수 없어 몇 발짝 다가가 보았더니 경허는 광녀에게 자신의 팔을 베개삼아 베도록 내어주고 자신은 그 여인의 치마폭에 다리를 척 걸친채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두 사람은 너무나 곤히 잠들어 있어 하는 수 없이 만공은 그대로 스승의 잠이라도 깨울세라 발 뒤꿈치를 들고 방을 나오려는데 방안을 진동하는 고약한 냄새에 신경이 쓰였다. 만공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방향을 찾아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냄새는 분명히 한데 엉킨 채 코를 골며 잠들어 있는 두 남녀의 몸에서부터 풍겨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채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여 행여 깰세라 조심스레 다가가 살피던 만공은 그 고약한 냄새가 바로 그 미친 여인의 몸에서부터 풍겨나오는 사실을 깨닿게 되었으며 그 여인의 잠든 모습을 본 순간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만큼 놀랐다. 그 여자의 얼굴은 코와 눈이 분간할 수 없을만큼 썩어 있었으며 손가락도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미친 여인은 한센병(나병)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코는 떨어져 나가고 구멍만 뚫렸으며 걸친 옷은 고름에 절어 올이 안보일 정도인데다가 머리카락도 모두 빠져 민대머리의 괴물이었다. 살이 썩어가는 고약한 악취가 나오고 있어서 만공은 도저히 코를 들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스승 경허는 이렇게 나병에 걸려 썩어가는 미친 여인과 한 방에서 열흘 이상이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고 살을 맞댈 수 있단 말인가. 그 길로 스승이 잠들어 있는 방을 도망치듯 물러나왔다. 이대로 두었다간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만약 조실스님인 경허가 미친 여인을 방안에, 그것도 나병에 걸려 온 뼈와 살이 썩어가고 있는 여인을 부등켜 안고 방안에서 열흘 이상 뒹굴고 있다는 소문이 나가게 되면 寺內 대중들은 스승 경허를 온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엽기적인 일을 좇아다니는 변태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마침내는 미친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해서 비상한 각오를 하고 간 만공은 방문앞에서 조심스레 스승을 불러 보았다.
“스님, 스님.”
그러자 방안에서 경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접니다, 만공입니다.”
“만공이 무슨 일로……?”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 왔습니다.”
방안에서는 한결 같은 경허의 대답 한소리가 날아올 뿐이었다.
“가거라. 내가 들을 말이 없다.”
“그래도 들으셔야 합니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찾아 온 만공이었으므로 준엄한 스승의 목소리에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 나갔다.
“도대체 무슨 말인데….?”
그제야 틈을 보이면서 경허가 물어 말했다.
“방안에 여인을 들인지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사내 대중들이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공은 말을 이어 내려갔다.
“조실스님을 모두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떼를 지어 찾아와 문안인사라도 드린다고 법석들입니다. 이재는 제발 거두시고 여자를 내쫒기 바랍니다.”
만공의 충정 어린 목소리에 긴 침묵 끝에 경허가 불쑥 물었다.
“정히 그러한가?”
“정히 그러합니다.”
“만공 자네도?”
“저도 그러합니다.”
그러자 방안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경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할 수 없군. 만공 자네까지 정히 그러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로군. 그러나 오늘 밤이 아니라 내일 새벽이야. 만공 자네가 여인을 동구 밖까지 바래다주시게.”
“알았습니다. 스님.”
만공은 천천히 조실을 물러났으나 그날 밤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인을 쫒아내는데 급급하여 간신히 승락을 얻어 내기는 했지만 나병에 걸린 여인과 마지막으로 작별을 나누며 살을 맞대고 있을 스승의 모습을 떠올리자 갑자기 만공은 도저히 스승의 법력을 따를 수 없구나 하는 절망감을 느꼈다고 생전에 한탄하면서 술회했던 적이 있다. 자신은 여인의 냄새마저도 견디지 못했다. 그런데도 스승 경허는 여인을 열흘 이상이나 품속에 안고 있지 않으셨던가.
만공은 문밖에 서서 기다렸다.
어디선가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겨울 밤 하늘엔 밝은 달빛이 충만했다. 하늘엔 은하의 별무리가 남북으로 길게 흘러내리고 있었다.잠시후 열흘 이상이나 굳게 닫혀 있던 경허의 방문이 소리없이 열리고 그 미친 여인이 보퉁이 하나를 들고나왔다. 잘 가거라 하는 일체의 작별인사도 없이 그대로 방문이 닫혔으며 만공은 행여 남의 눈에라도 뛸세라 여인을 데리고 경내를 빠저나와 동구 밖까지 바래다 주었다. 만공은 바래다 주면서 찬찬히 그 여인을 뜯어보며 어째서 스승 경허가 그처럼 이해할 수 없는 무애행(無碍行: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행위.부처가 바로 無碍人)을 했는지 궁리해 보았다.
스승 경허는 저 썩어가는 육체를 지닌 여인을 열흘 동안이나 곁에 두고 살을 맞대었다. 너는 그러할 수 있겠는가?
스승 경허는 제정신이 아닌 미친 저 여인을 열흘 동안 밥을 먹여주고 함께 다정히 말을 나누었다. 너는 그러할 수 있겠는가?
스승 경허는 코가 떨어져 나가고 눈썹이 없고 입마저 헐어버린 나병에 걸린 여인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그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질하여 단정히 빗겨주곤 했다. 너는 그러할 수 있겠는가?
스승 경허는 동냥질하며 이 동리에서 저 동리로 떠돌아 다니는 거렁뱅이 여인이 눈에 덮혀 죽어가게 되자 그 여인을 업고 방안에 들여다가 체온으로 녹여 살려주었다. 너는 그러할 수 있겠는가?
스승 경허는 고름이 흘러내리는 여인의 몸을 혀로 핥았으며 오물로 뒤범벅 되어 있는 여인의 몸을 서로 맞대어 살을 나누었다. 너는 그러할 수 있겠는가?
네 눈에는 그 여인의 거렁뱅이로서의 모습과, 환자로서의 모습과,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고름이 흘러내리는 모습과, 미친 여인으로서의 행색과 그 숨소리와, 견딜 수 없는 악취만이 보이고, 들리고, 냄새 맡아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너는 그 여인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나 스승 경허는 그 여인을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본 것이다. 네가 본 것이 다만 하나의 형상과 색(色)에 불과하다면 스승 경허는 그 여인에게서 법신(法身)을 본 것이다.
이 때의 심정을 만공은 먼 훗날 다음과 같이 술회한 적이 있었다.
“나도 경허 스님처럼 이 여인을 데리고 하룻밤만이라도 잠잘 수 있을까 생각했다. 도저히 나는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몹시 부끄러워졌으며 스승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여인을 동구 박까지 바래다주고 도망치듯 해인사로 돌아온지 며칠 후 만공은 기회를 보아 경허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어째서 입니까, 스님?”
밑도 끝도 없는 만공의 질문에 경허는 다만 이렇게 대답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여인이 거렁뱅이가 된 것은 전생에 고대광실의 왕비였기 때문이며, 미쳐버린 것은 전생에 지나치게 총명했기 때문이며, 나병에 걸린 것은 지나친 미모로 뭇사람들을 미혹시켰기 때문이며, 몸에서 흘러내린 고름은 전생에 온몸에 발랐던 화장수이며, 몸에서 풍겨오는 악취는 전생에 온몸에 바르던 향수에서 풍겨나온 아름다운 향내였다”
해인사 시절 승려로서 마지막 시절인 52세 무렵에 일으킨 이 이해할 수 없는 나병환자 여인과의 무애행을 고비로 경허는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한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여인으로부터 경허는 고질적인 피부병을 옮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나병은 아니지만 치명적인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간 의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처방법을 들었다고 한다.
“닭똥으로 소주를 달여 개고기와 곁들여 먹으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승려로서 마지막 해인사 시절, 경허는 주량과 육량이 무서운 속도로 늘어났다고한다. 그 후 해인사를 떠나 오대산 월정사를 거처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석왕사에서 오백나한재에 법사인 증사로 초대받아 승려로서 행한 마지막 공식 행사를 마치고 “부처가 되려거든 부처를 버려라”는 말대로 자신의 법명인 성우(惺牛)도 던져 버리고, 법호인 경허(鏡虛)도 던져버리고 박난주(朴蘭舟)란 병든 늙은이로 살아간다. 이때가 그의 나이 57세 1905년이다. 그 삶 또한 평범한 삶은 아니다. 기회 있으면 소개 하겠다.
(註)
본 소설의 작가는 무애행 때문에 그의 생애는 다소 오해를 받기도 하고 비난의 대상도 되었지만 그의 법통을 이은 ‘세 개의 달’ 즉 만공, 수월, 혜월 등 빼어난 선사들과 한암 등 불세출의 선걸들이 모두 경허의 법제자이고 보면 극히 한부분의 파행으로 전 생애를 매도해버리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는 주장으로 “길 없는 길”이란 경허 스님의 일대기를 쓴 인연으로 그의 열반 10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살려 봄으로써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고 아랫물이 맑으면 윗물도 맑다.’는 진리를 되새기며 다시한번 밝혀보았다고 한다.
2013, 7, 27.
최인호의 “할(喝)” 에서
해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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