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딸이 살고있는 미시간주 Ann Arbor라는 곳엘 다녀 왔다.
호수가 많고 작은 구릉지 같은 것도 많아 물이 많고 나무도 많아 쾨적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사람들 또한 친절하고 활기 있어 보이는 인구50만 정도의 아름다운 도시 같았다.
우리 딸이 사는 곳도 도시의 남서쪽에 위치한 신개발 주택단지 안에 있어 쾨적하고 아름다운 주거지역인 것 같았다. 여기에서 얼마간 보내면서 그들의 삶의 여유로움과 친절, 그리고 남을 배려 하는 너그러움 같은 것을 엿 볼수 있었다.
길거리에 나가보면 인도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아니 거의 없다.그런데 인도가 있는 곳에는 건널목의 차도와 인도는 턱이 없다.즉 휠 체어를 타고도 턱이 없으니 그냥 혼자서도 건너 갈수 있다.
그리고 쇼핑센타에 가 봐도 출입 문엔 턱이 없다.만약 턱이 만들어저 있으면 그 옆에 휠 체어를 타고도 들어 갈수 있도록 별도로 턱이 없는 출입문이 반드시 만들어 져 있다. 화장실에 가 보면 출입 문에는 절대로 턱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그러면서도 그 안에는 장에자 용, 어린이 용이 별도로 만들어 져 있다.그리고 가정 집에도 화장실 문에는 턱이 없다.동거 하는 가족 중에 장애자는 없는 대도, 내실, 거실,건너방에도 마찬가지다.뿐만 아니라 화장실 바닥에는 하수구도 없다.그러니 청소 할때는 걸레로 안방 닦듯이 닦아야 한다.그리고 이지역은 겨울이면 눈이 많이 온다고 한다. 그때 내 집앞의 눈을 재대로 치우지 않아 지나가는 행인이 부상이라도 입으면 그 치료비를 변상 해 줘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서는 다른 차가 없어도 반드시 정차를 한 후 사방에서 먼저 온 찰량 부터 순서대로 출발 한다. 그리고 사람이 건널때는 무조건 사람 우선이다.
물론 나도 이런 것을 처음 접한 것은 아니다. 서구 선진국의 호텔에 들어 가 보면 화장실엔 턱도 없고 화장실 바닥에는 하수구 라는 것이 전혀 없다.그레서 우리식으로 목욕탕에 물을 담아 몸을 담그다가 물이 넘처 거실의 카팻트를 버릴 수 있으니 주의 해 달라는 호텔측의 당부를 받은 적도 있었다.
나는 몇일 전 서울시내 모 은행에 볼일이 있어 들렸다가 나오면서 어떤 장애우(여자)가 휠 체어를 타고 은행으로 들어 오는 사람과 마주 쳤다. 보아하니 휠 체어에는 자동 조절 기능이 부착 되어 있고, 또, 한 젊은이가 보호자로 밀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 은행 출입문에는 바깟 쪽으로 재법 높은 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출입문이 통유리로 된 문에 다가 수동으로 된 여닫이 문이 었다.그레서 그 젊은이가 엉덩이로 문을 밀면서 휠체어를 끌려고 했으나 턱과 문 사이의 거리 때문에 몹시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제가 잡아 드릴께요" 하고 문을 잡아 주었더니 쉽게 들어 갔다. 이 안타가운 광경을 보면서 나는 미국에서 본 일들이 뇌리를 스치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고 또 이글을 쓰게 되었다.
이 두 곳에서 있었던 일을 비교하면 그곳에서는 우선 인도에 걸어 다니는 사람 자체가 적을 뿐만 아니라 장애자나 노약자는 거의 볼수 없었다.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자나 노약자가 통행하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만들어 져 있었다.이것이 어렵고 불편한 사람에 대한 배려이고 이것을 보면서 자란 어린이 들은 배려하는 마음 가짐을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성장 해 갈 것이다. 특히 가정집에서는 우리 가족중에는 장애자도 노약자도 없지만 그들이 이용하기 편하도록 턱이 없다는 것은, 내가 이사 간 후에 이집에 들어와 살 사람 중에는 그런 장애자나 노약자가 있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턱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 얼마나 깊고 너그러운 배려 입니까? 집을 소유 한다는 개념 자체가 우리와는 사뭇 다른 것이지요.지금은 내가 사는 나의 것이지만 이집을 팔고 이사를 가고나면 또 다른 가족들이 이집에 들어와 살 것이니 그들과 공유해야 하는 집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아닐까? 이런 집, 이런 환경에서 자라가는 어린이 들은 남에게 배풀면서 배려 하면서 살아 가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 할 것이다. 우리집 앞을 지나가다가 넘어 진 사람에게 " 죄송 합니다. 재가 눈 치우는 것을 재때에 하지 못했습니다. 다친 대는 없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삿 말입니까?
서울에서 있었던 그 자리에서 만약 그 장애자가 넘어 지기라도 했거나, 다치기라도 했으면 그 은행 경비는 뭐라고 말 했을까요? 아마 "조심 하셔야지요!" 라고 하지 않았을까?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초 호화 아파트 든 서민 아파트 든 화장실 출입문에는 높은 턱이 있다.그리고 바닥에는 큼직한 하수구가 뚤려 있다. 그래서 청소하기는 그지없이 편하다. 고무 호수 연결해 수도 세~게 틀어 놓고 뿌려대면 금방 청소 끝 난다.그러나 그 집에 장애자나 노약자가 있다면 혼자서는 도저히 화장실에 들어 갈 수가 없다. 그래도 좋다 우리집에는 장애자도 노약자도 없으니까다. 내가 떠난 다음 이 집에 들어와 살 사람 정도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즉 다음 사람들과의 공유의식 같은 것은 찾아 볼수가 없다. 시내에 있는 상업용 건물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장애자나 노약자등은 아예 우리 상가에 안 왔으면 좋겠다는 사고 방식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사고 방식인가? 그래도 "고객은 왕이다"는 프렝카-드도 걸어놓고 직원들 교육도 시키면서 말이다.이런 것을 보면서 자라는 우리 후세들, 어떤 사람으로 성장 해 갈까요?
우리사회의 혹자들은 미국같은 선진국 대기업, 또는 기업주들은 사회에 많은 재산을 기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 또는 기업주들은 너무나 인색하다고 그들을 욕하고 악덕 기업인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사실 그렇다. 우리의 대학들도 후원금 등이 미국 같은 나라에 비교하면 보잘 것 없다. 그레서 기여입학제란 말도 나온다. 장애자들에 대한 지원 또한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장애자들을 차별하지 말고 내자식 같이 사랑 하고 지원 하고 후원해야 한다고 주장 하면서도 우리집앞에 장애자 시설이 들어 오면 결사 반대한다. 이유인즉 우리집 집값 떨어지고 우리아이가 장애아와 노는 것이 싫어서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이율 배반적인 주장인가? 우리는 근본적인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행동도 바꿔진다.그렇다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여기서 기성세대들에게는 크게 기대 하지도 말고 우리 다음 세대들에겐 교육을 통하여 확실하게 바꿔 놓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 한다. 기성 세대 들에게 기대를 걸지 말자는 것은 그들이 성장해 온 과정은 가난에서 벗어 날려고, 가난만은 대 물림 하지 않겠다는 다부진 생각으로 피땀 흘리며 일 해왔고 또 그꿈을 이루었다. 이런 분들에게, 또는 이광경을 직접 보고 듣고 자란 바로 다음 세대, 이런 사람들에겐 굳어진 고정관념이 생겼을 것이니까 큰 기대를 걸지 말자는 뜻이고, 그 다음 세대들은 가난은 이미 면했으니 학교교육 뿐만 아니라 거리. 시장, 학교, 공공시설등으로 부터 가정에 이르기 까지 우리의 생활 환경 자체를 장애자들에게, 노약자들에게,가난한 사람들에게 편리하게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해 줌으로서 남에게 배려할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 해 가지 않을까? 즉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지 안을까? 그레서 이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회 지도층이 되었을 때 우리 사회도 앞에서 말한 그런 선진 사회가 되지 않을까?
이재 생각을 바꾸어 봅시다. 행동이 바귈 때 까지.........
2006, 11월 초 어느날 밤 해봉
'승범(承汎)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龍門山 山行記 (0) | 2010.08.19 |
---|---|
참회하고 용서할때 인생은 의미를 지닌다 (0) | 2010.07.15 |
若無湖南 是無國家 (0) | 2010.01.24 |
어느 봄날 (0) | 2009.08.15 |
지하철 탄 할머니의 오천원권 (0) | 2006.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