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박정희도 나와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공정, 균형, 포용으로 위장된 발전 저항문화로 뒤덮여 있다.
"해봤어?"라는 정주영의 도전
"세계는 넓다"는 김우중의 모험
"안 되면 죽자"던 박태준의 분투
이런 '박정희의 가치' 되살려야 우리도 살고 자손도 산다!
# 20년 전인 1999년 '문화적 가치와 인류 발전'이란 주제로 미국예술과학학회 심포지엄이 메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열였다. 이 심포지엄의 내용은 당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는 시점에 한권의 책으로 나왔다. '문화가 중요하다(Culture Matters)'가 그것이다. 책의 부제 역시 '어떻게 가치가 발전을 만드는가?' 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헤처나오느라 '문화' 니 '가치' 니 하는 얘기에 별반 관심 둘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 심포지엄을 주도했고 우리에게는 '문명충돌론'으로 더 잘 알려진 새뮤얼 헌팅턴은 '대한민국'을 책의 첫머리에 띄우며 지금은 시사상식처럼 되어버린 '한국-가나' 비교론을 제시했다.
# 1960년대 한국과 가나의 1인당 GNP를 포함해 여러 경제지표는 난형난제였다. 그런데 30년 뒤 한국은 세계14위의 경제 규모를 지닌 나라가 되엇지만 가나는 한국의 15분의 1 수준도 안 되었다. 이것이 '한국-가나' 비교론의 골자다. 하지만 정작 헌팅턴이 강조했던 것은 그런 격차를 만들어낸 것이 다름아닌 '문화'였고 그 안에는 한국 특유의 '가치투쟁'이 녹아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치열한 가치투쟁이 만들어낸 문화가 엄청난 발전과 성장의 격차를 만들어낸 진짜 원인이었다고 진단한 것이다.
# 지난 반세기에 걸친 한국인의 가치투쟁은 단적으로 '도전, 모험, 분투' 의 세 단어로 압축될 수 있다. 맨손으로 현대그룹을 일궈냈던 정주영의 강원도 통천 사투리에 담아낸 "해봤어?"라는 한마디가 '도전의 가치투쟁'을 압축한 것이라면, 세계경영의 큰 판을 벌였던 대우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모험의 가치투쟁'을 고스란히 응축하고 있었다. 또 제철입국을 선언하며 "제철소 성공 못하면 우향우해서 포항바다에 다 빠져 죽자"는 박태준의 투박하고 처절한 외마디는 '분투의 가치투쟁'이 응집된 시대의 어록이었다. 그리고 이런 도전,모험, 분투의 가치투쟁'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시대정신과 문화를 형성했던 것이다.
#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더 이상 도전하지도, 모험하지도, 분투하지도 않는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시대정신과 문화는 그저 촌스러운 외마디 구호로 퇴색돼 입에 올리기 조차 민망해진 표현처럼 외면되고 말앗다. 그 대신 공정, 균형, 포용이란 아주 잘 포장된 가치들이 전면화 되었다. 도전, 모험, 분투의 벌거벗은 가치는 공정, 균형, 포용이란 잘 포장된 가치들 앞에서 마치 화려한 스펙의 자식을 키워낸 남루하고 못 배운 부모의 모습처럼 뒷걸음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토록 절박하게 '도전, 모험, 분투의 가치투쟁'을 벼려왔기에 공정, 균형, 포용이란 가치가 설 땅도 생긴것 아닌가.
# 지금의 40대까지는 도저히 믿기지 않겠지만 오죽하면 '一日三食 完全保障'이 큼지막한 선거포스터에 버젓이 유일한 공약사항으로 찍혀 있었을 정도로 우리는 극한적인 가난과 기아선상에 서 있었다. 그 처절한 가난과 남루함을 일거에 남들이 부러워할 대상으로 돌변시킨 원동력이 다름아닌 '도전, 모험, 분투의 가치투쟁'으로 일궈낸 '발전지향의 문화'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때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지만 도저히 불가는할 것이라고 남들이 보았던 민주주의의 장미꽃을 우리가 직접 피워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역시 사회구조상 중산층이 어느정도 먹고살만해졌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음을 그 누가 부인할 건가. 실제로 우리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사람이 굶어죽는 기아선상의 가난을 몰아내고, 심지어 IMF외환 위기마저 최단기간에 극복하며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도전, 모험, 분투의 가치투쟁'들이 합심해서 만들어낸 "잘살아 보세"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발전지향적 문화' 덕분이 아니었던가.
#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발전 지향적 문화'가 아니라 '발전저항적 문화'로 뒤덮여 있다. '발전저항적 문화'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공정, 균형, 포용'이란 이름의 가치다. '발전지향적 문화'가 주도하는 사회에서는 부(富)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부를 만들고 새로 창출하는데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도전하고 모험하고 분투하며 저마다의 가치투쟁을 벌인다. 국가는 그런 '도전, 모험, 분투의 가치투쟁'에서 개인과 기업이 겉돌지 않도록 걸림돌을 제거하는 규제 완화와 경제생태계 활성화에 온 힘을 기울이는 '기업가형 국가'가 된다. 반면에 '발전저항적 문화'로 뒤덮인 사회에서는 부를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더 이상 새롭게 부를 창출하기 위한 '도전, 모험, 분투의 가치투쟁'은 애써 외면하고 심지어 거부한 채, 오로지 이미 존재하는 부를 '공정하게' 나누고 '균형되게' 갈라먹으면 그게 '혁신적 포용' 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화 되어 버린다. 이런 '발전저항적 문화'에서 국가는 이미존재하는 부를 세금으로 쓸어모아 퍼주기와 나누기에만 골몰하는 '징수 배급형 국가'로 전락해 버린다.
# 지금 '새로운 노무현'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공정, 균형, 포용이란 이름의 가치는 노무현의 가치다. 그렇다면 지금 '새로운 박정희'도 나와야 한다. 도전, 모험, 분투의 가치는 박정희의 가치다. 두개의 가치는 충돌하고 다툴 수 밖에 없다. 진검승부하듯 제대로 다투면 거기서 새로운 미래가치가 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나라와 미래가 전진할 수 있다면 회피할 이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대대적인 가치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시대정신과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내일을 결정한다.
2019년 5월 29일자
조선일보 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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