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해와 편견, 자비"
어느날, 그림을 열심히 그리던 한 아이가 갑자기 잘 그린 멀쩡한 그림에 펀칭으로 구멍을 숭숭 뚫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구멍난 그림을 마구잡이로 접더니, 가위를 가져와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러면서 '재미잇다.'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것이었다.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필자는 깜짝 놀라 속으로 미루어 짐작했다. '억압된 분노와 공격성이 표출된 것이 아닌가.....'잠시 망설이다가 아무래도 도움을 줘야 할 것 같아서 그 아이 엄마에게 그림사진을 보여주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 그거요? 얼마 전에 친구 따라 미술 교실에 갔는데 거기서 스트레스 풀라며 싫어하는 것을 그려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줬데요, 호호호."
그랬다. 오해이고 편견이었다.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 문득 도화지를 새까맣게 색칠하고 있는 어린이를 '우울하고 상처를 받은 아이'일 것이라고 잘못 판단했다던 누군가의 일화가 떠올랐다. 알고보니 그 아이는 어제 저녁에 먹었던 맛있는 검정색 '김'을 즐겁게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처럼, 고정관념은 오해와 실수를 불러 일으킨다. 자신만의 사고방식에 같혀 보이는 대로만 남을 규정하고 판단하거나, 편협한 지식이 전부인줄 믿고 그 잣대에 상황을 끼워 맞추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다가 어느새 스며든 교만의 유혹이 잘못된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게 한다.
흔히 애니어그램, MBTI검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성격 유형을 구분한다. 또 혈액형, 별자리로 사람의 특성을 구분지어 판단한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과 행동은 유전, 어린시절, 살아 온 경험, 가치관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다. 또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상황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보이는 상황과 실제는 충분히 다를 수 있다. 저마다 나름대로의 여건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시각에서 서로 이해하려는 배려와 노력이 필요하다. 똑같이 꼬리를 흔들어도, 강아지는 반갑고 기분이 좋다는 뜻이지만 고양이가 꼬리를 들면 공격을 개시한다는 선전포고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므로 사람의 생각과 마음속을 훤히 들려다 보는 초능력이나 마음눈을 지니기 전까지 섣불리 사람을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조금만 이해의 폭을 넓혀보자. 길을 가다 마주쳤는데 얼굴을 보고도 인사를 하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던 사람은 어쩌면 그 날 안경을 집에 두고 나와 진짜 못 알아봤을 수도 있고, 집에서 가족과 다투고 혼자만의 슬픔에 빠져 있었을 수도 잇다.
요즘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자주 되새긴다.
정치, 사회, 종교, 이웃, 가족, 친구간의 여러 문제들을 솔직한 대화와 이해, 배려로 풀어나간다면 좀 더 희망찬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네편이나 내 편, 선과 악으로 구분지어 편을 가르거나 판단하지말고,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닮아 사랑으로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면 좋겠다.
서로 존중하고 받아들이자.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고요하게 받아들이고, 귀를 열어 진실을 경청해 보자.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 하느님께 다름질 쳐 가고 있는 한 공동체이다. 완벽하게 착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없다. 완전한 분은 하느님 뿐이시다. 판단도 오직 하느님의 권한이다. 이번 사순시기에는 편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고, 넉넉하고 자비로운 사람으로 부활했으면 좋겠다.
"오소서, 진리의 성령님, 따뜻한 빛으로 편견으로 굳어진 생각과 마음을 녹여 새롭게 부활하게 하소서. 아멘"
-서전복 안나(동양화가,미술교육가)-
2016, 3, 6.
천주교 수원교구 "위로의 샘"에서
해봉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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