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아름다움
나는 오늘 점심모임이 있어 압구정동에 같다가 귀가할 때 압구정 로대오역에서 분당선 지하철을 탔다. 경로석엔 자리가 없어 일반석 가운데에 앉았다. 내 옆에도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그때 한쪽에서는 70대 후반이나 80전후로 보이는 할머니가 앉으려고 다가오고 있고, 한쪽에서는 60대 후반이나 70쯤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쇼핑빽을 들고 오면서 얼른 자리에 앉았다. 그 때 할머니가 한 말씀 하신다. “아이고- 동작도 빠르네 사내가 염치도 없이….”라고, 이어서 할아버지도 한 말씀 응대 하신다. “염치라니요 말 조심 하세요. 앉고 보니 미안해서 양보 할려고 했더니…….”하면서 그냥 앉아서 갔다. 그랬더니 바로 옆에 앉았던 아주머니가 자리를 양보해서 할머니도 앉으셨다. 그런데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싸움은 계속되고 말았다.
할머니가 혼잣말처럼 “뭐! 말 조심하라고, 나이 먹은 사람 보고…..”라고 했다. 할아버지도 또 한마디 하신다. “늙은 것(나이 먹은 것이란 뜻)이 무슨 유센 줄 아나………”라고. 이렇게 말꼬리를 물고 말 싸움은 계속 되었고 말투는 점점 험해져 갔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내 바로 옆자리에 붙어 앉았으니 나도 얼굴이 따가워 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옆에 앉은 남자의 허벅지 부분을 툭 치면서 “참으세요” 라고 귓속말처럼 작게 말했다. 그랬더니 애이~하면서 벌떡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 버렸고 싸움은 끝났다. 할아버지는 분명 할머니가 앉으려고 하는 것을, 서서 가는 사람들에게 가려 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앉고 보니 할머니가 보였는데 그 때 양보할 틈도 없이 화 낸 목소리가 날라와 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싸움인 것 같았다.
나는 계속 전철을 타고 오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잘, 잘못은 따질 필요도 없고 따질 가치도 없다. 나도 저런 경우에 그들과 같이 화 내면서 싸웠을까? 나이를 먹으면 원래 저렇게 변해가는 것인가? 참지 못하고 말입니다.
지하철에서 가끔씩 소리 지르면서 싸울 때면 어김없이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가 끼어 있었다. 그리고 무슨 모임 같은 곳에서도 70대 이상 80에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포용력도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작은 일에도 서운한 생각이 잘 들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젊었을 때 ‘대접받고 살았는데’라는 착각에서 마음을 비우지 못해서일까? 단순한 나이 때문일까?
그래서 오늘은 “여류작가 박경리와 박완서의 老年觀”이란 글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반성이라도 해볼까 생각하면서 옮겨봅니다..
소설가 박경리씨는 운명하기 몇 달 전 이렇게 말 했습니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그리고 박완서씨는 이렇게 글을 썼다.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서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 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난 살아 오면서 볼 꼴, 못 볼 꼴 충분히 봤다.
한 번 본 거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한 겹 두 겹 어떤 책임을 벋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도 그만이다.”
두 분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여류 소설가였다. 그리고 조용한 시골집에서 행복하게 삶을 마감했던 분들이다. 그야말로 考終命 하신 분들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란 말이 있지요. 가장 아름다운 인생(上善)은 물처럼 사는 것(若水)아라는 뜻이지요. 물처럼 살다가 물처럼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처럼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표현하는 말도 없을 듯 싶습니다. 위의 두 분은 물처럼 살다간 대표적인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흐르는 물처럼
남과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는 不爭의 삶을 보여 주었고
만물을 길러주고 키워주었지만 자신의 공을 남에게 과시하려 하거나
결코 다투려 하지 않는
上善若水의 초연한 삶을 살았습니다.
두분은 온 몸으로 말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셨습니다.
흙에게, 나무에게, 바람에게, 흘러기는 구름에게도 고마움을 잊지않고,
보면서 쓰면서 우리들에게 말년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배웠습니다.
이해하면서 살라고, 감사하면서 살라고, 배려하면서 살라고.
2014, 7, 18.
해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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