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연 (因 緣)
因緣이란 무슨 뜻인지, 사전을 찾아 봤더니,1,서로의 연분, 2,어느 사물에 관계되는 연줄, 3,내력, 이유, 4,불교에서의 因과 緣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과 그 因으로 말미암아 얻을 간접적인 힘이라 했으며, 일체의 중생은 因과 緣에 의하여 생멸(生滅)한다. 즉 모든 존재는 인연에 의하여 생겼다가 인연에 의해 멸(滅)한다. 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인연으로 태어났으며, 월지라는 동네에서 태어난 것은 또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답은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神만이 아는 일 이다’는 결론밖에 없었다. 월지라는 동네에서 태어나서 서울에 와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또 수많은 일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고통과 웃음, 희망과 절망, 평화와 혼란을 거듭하면서 오늘 여기까지 왔다. 절망에 빠져 자살의 충동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복 받고 태어났다. 그리고 행복하다.”그래서 신께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우리 속담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란 말이 있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옷깃이란 ‘옷의 목을 둘러 앞에서 만나는 부분’이란 뜻이다. 의금(衣襟)이라고도 한다. 다시 말하면 옷깃은 앞가슴 부분을 가리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옷깃을 스치기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서로 포옹 하거나 손으로 가슴팍을 만지지 않으면 스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인연이 이루어 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편 일리가 있는 말 같기도 하다. 인연이란 너무 쉽게만 이루어지는 것도 그리 바람직 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그러나 이 말의 속성상 해석은‘지나가다가 어깨만 부딪쳐도, 옷자락만 스쳐도, 바람에 날리는 옷고름만 스쳐도 인연이다’는 말로 사용 되어 왔던 것 같다. 즉 작은 관계도 하나의 인연이 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란 말이 있다. 관련된 얘기 하나 소개하면 원래 오비이락 파사두(烏飛梨落 破蛇頭)라고 했는데 까마귀가 배나무 위에서 배를 쪼아 먹고 날아 갔을 때, 배나무 가지가 흔들리면서 배가 떨어졌다. 그때 밑에 있던 뱀의 머리 위에 떨어져 뱀이 죽게 되었다. 이렇게 죽은 뱀은 되지로 환생했다. 그리고 까마귀는 꿩으로 환생하여 숲속에서 알을 품고 있었는데 이때 그 되지가 풀을 뜯어 먹다가 돌을 굴려 밑에서 알을 품고 있던 꿩을 덮쳐 꿩이 죽게 되었다. 그후 꿩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사냥꾼이 되어 되지를 사냥하러 다닌다는 얘기다. 지독한 악연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전생이 무엇이었는지 죽으면 무엇으로 환생할 건지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서 생각을 할 줄 아는 인간이라 법당에서, 교회에서, 또는 자기가 믿는 神에게 이런 악연을 끊어 달라고 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 된다. 물론 환생 자체를 부정하는 종교,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유사한 기도를 올리면서 살아 가는 것은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렇다면 월지 사람들끼리의 인연은 어떨 것일까?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정말 위에서 얘기한 대로 쉽게 이루어 진 인연은 분명 아니다. 스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앞가슴을 터놓고 만난 사람들이다. 빨가벗고 냇가에서, 또는 저수지에서 멱도 감고 수영도하고, 끌어안고 물속으로 뛰어 들기도 하고, 손잡고 끌어 올려 주기도하면서 자라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옷깃이 아니라 살갗으로 부딪치면서 성장해 온 사람들이다. 이런 인연을 어떻게 보통 인연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어릴 때 이웃에 이의동란 친구가 살고 있었다. 학교도 같은 학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가난하게 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다닐 때도 지게를 지고 농사일을 하고, 땔감용 나무를 하러 다닌 것으로 기억된다. 그의 집은 정지(부엌)와 안방, 세간방 하나로 된 토담초가집 한 동에 방아간과 곡간, 마구간 등이 있는 아랫체(큰 집은 사랑방이 있었다.)와 헛간(재와 농기구등을 보관하는 창고), 그리고 마당으로 구성 되어 있었다. 좁은 마당의 한쪽핀(한쪽 편의 방언)에는 소를 묶어두는 소마당(?)과 퇴비장(볏집과 인분, 가축의 분료를 섞어서 비료대신 쓰던 거름을 쌓아 둔 곳))이 있었다. 그리고 아랫체 옆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이것이 그시절 대표적인 농가형태다. 화장실은 물론 마구간, 퇴비장, 소마당 이모두가 냄새를 피우는 것들이다. 그러니 마당에 앉아 있다는 것은 냄새 나는 것들의 가운데에 앉아 있는 셈이다. 그래도 그 시절엔 그 냄새들이 싫기는커녕 달콤했던 것으로만 기억된다. 정월 대보름 때는 이 퇴비장 위에 옥수수대로 만든 모의 농산물을 심어 두었다가 저녁 때 달을 보고 돌아와사 이 모의농산물을 타작을 해 그해의 풍작을 빌던 풍년놀이를 올리기도 했던 곳이다.
주로 내가 그 집으로 놀러갔다. 특히 여름 저녁시간에 그 친구 집 마당에서 멍석을 깔고 그 위에 앉아 국수를 나눠먹으면서 놀았던 생각이 난다. 그의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 하시면서 더 많이 먹으라면서 맨손으로 한 줌 듬뿍 쥐어, 내가 먹던 그릇에 담아 주시던 것이 생각난다. 이러한 나눠먹기씩 문화는 이웃집 뿐만 아니라 친척집, 친구 집에서 아니 월지라는 동네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뿐만 아니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이튿날 아침에 떡과 음식을 이웃집에 나누어 주었다. 이것을 음복이라고 하는데 이 음복이 끝나야 제사가 끝난다는 말은 어른들께 많이 들어온 말이다. 이 또한 나눔의 문화고 배려의 문화다. 명절 때도 마찬가지다. 설이나 추석, 대보름 때도 제사가 끝나면 이렇게 서로 나누어 먹고, 어린 아이들은 이집 저집 돌아 다니면서 얻어와서 한자리에 앉아 나누어 먹기도 했다. 이 역시 나눔의 문화고 배려의 문화라고 생각된다. 이것만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어른을 만나면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를 올렸다. 잘못하면 그 자리에서 야단을 맞기도 했다. 그 시절의 인사말은 “아침(또는 저녁)잡샀는교”다. 즉 “아침 잡수셨습니까?” 라는 경상도 방언이다. 이말 뒤에는 “혹시 굶지는 않으셨습니까?”란 뜻으로 하루 세끼 밥 먹기도 힘든 시대배경이 뒤에 숨어있는 인사말이다. 설 명절 때는 온 동네 어른들에게 돌아 다니면서 세배를 올렸다. 어른을 공경하는 인성교육이다.
우리는 이런 우리 고유의 나눔과 배려의 문화, 예절교육을 받으면서 월지라는 동네에서 태어났고 그렇게 자라왔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각자 일터로 흩어져 살아 왔다. 그래도 서울에 와서 사는 사람들이 제일 많을 것 같다. 비록 월지를 떠나서 살았을지언정 어릴 때부터 배워 온 나눔의 문화나 예절교육은 머리 속 깊이, 아니 뼈 속 깊이 자리잡고 있어 모든 언동의 근원이 되었으리라 믿어진다. 서울에서도 우리 월지 사람들은 월지회라는 친목 모임을 갖고 매월 한번, 가족 동반하여 3,4십 명이 모여 등산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친목을 쌓아가고 있다. 혹자는 ‘무슨 시골 동네모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느냐’무슨 郡民會냐?고 시샘 어린 말을 던지기도 한다. 부러워서 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객지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예의 바르다’는 말은 다들 많이 들었을 것이라고 믿어진다. 이 모든 것이 다 어린 시절 월지라는 동네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맺어진 인연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이런 깊은 인연이야말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다. 앞으로 더욱 빛이 나는 아름다운 문화로 가다듬어 가야 할 인연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서 '월지회,월지 사람들'은 더욱더 화목한 모임으로 발전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아가서 이 사회를 밝은 사회로 만들어 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자기가 지은 업보(業報)는 자기가 받고 자신이 뿌린 씨앗은 자신이 거둔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곧 좋은 인연을 지으면 좋은 결과를 낳고, 나쁜 業을 지으면 그 果報도 고스란히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因果의 철칙을 말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좋은 인연으로 맺어진 우리 월지회원들은 우리사회 어떤 곳에서 일 하든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뿌린 그 씨앗이 성공적인 수확을 거두어 들일 것이라는 因果의 철칙을 굳게 믿으면서 ………………
2013, 4, 10.
해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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