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일
회개는 죄인이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호소는(1427항) 내가 죄인일 때에만 해당합니다. 과연 나는 죄인 입니까? 우리는 유혹자에게 유혹당한 것이 아닐까요? 유혹당한 것은 연약해서, 또는 사람 때문에, 아니면 내 성장배경 탓,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이 세상의 탓이 아닐까요? 하지만 타인, 환경, 그리고 세상은 나를 억지로 죄짓게 못합니다. 죄는 결국 내가 선택 한 것이니까요. 그 유혹이 '먹음직 해 보였기(창세3,6)' 때문에 스스로 손을 내 밀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는 단지 유혹 당했을 뿐이고 나를 죄짓게한 것은 사탄이라면, 회개는 사탄이 할 일이지 내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하신 걸까요? 죄를 사랑하고 선택한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사탄도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빚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고, 이 마지막 시대에도 재물을 쌓았고(야고5.3), 영성생활을 지겨워 하며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맞겼고, 정결 보다 음란을 더 좋아했고, 용서보다 복수를, 덮어주기 보다 폭로하고 덧붙이기를, 그래서 하느님 보다 죄를 더 좋아했던 것입니다.우리는 싫어하는 것을 선택할 일 없읍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사탄이 아니라 바로 우리, 바로 나이고(1요한1,10) 따라서 내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신앙의 첫 발자국입니다.(1072항). 그래서 신앙처럼 회개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시작됩니다(1428,1432,1989항). 잠자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자고 있는지 모릅니다. 누가 깨워주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를 깨워 줍니다. 깨고 나서야 비로서 자신이 잠 들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배드로야, 빨리 일어나라(사도12.7)'하고 하느님의 천사가 옆구리를 찌릅니다. 이것이 은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할 일도 있습니다. 잠에서 깬 후 일어날지 말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강제하지 않습니다(2002항). 즉 베드로처럼 일어나서 감옥을 탈출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사도12.8).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깨닫고 회개하도록 스스로 힘쓰라고 독촉하십니다. '그 사람들이 더 좌가 많은 줄 아느냐?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루카13.5).' 지금도 예수님은 똑같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화재, 사고로 죽은 그 사람들이 더 죄가 많아서 그런 줄 아느냐?' 그러면 지금도 사람들은 그때처럼 대답할 것입니다. 즉 '네 알겠습니다. 주님, 내일 회개할게요,''설마 그날이 오늘이겠어?' '지금 바빠요. 결혼도 했고, 밭도 샀고, 집도 짓고 있고....(루카14,16)라고 말이죠. 하느님은 은총으로 우리의 원의를 일으키심으로써 일을 시작하시며 우리의 의지에 협력하심으로써 일을 완성하십니다. 누가 죄를 짓거나 공로를 쌓는 것은 자유의지가 있기에 성립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로 회개해야 합니다. 새들이 제 날개를 펴고 제 나름의 협력을 해야만 멀리 날 수 있습니다. 비록 바람의 충동을 받았으나 헛되이 되어 버리는 것은 스스로 해야할 몫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은총이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루치펠은 은총으로나 본성으로도 월등하였지만 자유의지로 타락하였고, 은총에서 보다 뒤떨어졌던 다른 천사들이 끝까지 하느님께 충실했던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하느님의 은총에 충실한 의지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우리는 '회개하려고 싸워야 합니다(2731항).' 하느님께서는 큰 소리로 우리 귀에 대고 외치고 계십니다.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루카13,5)"
"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고 호소하신다."
2013, 3, 3.
수원주보에서 이승제(요한 세례자) 신부/서정동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