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깨닫고, 실천하라'
가토릭 신자들은 복음을 듣기에 앞서 이마와 입술, 가슴에 십자표를 긋습니다. 그것은 들려주신 말씀을 머리에 새기고, 입으로 고백하고, 가슴에 깊이 각인시켜 이를 실천으로 옮기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신앙 행위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말씀에 대한 '들음, 깨달음, 실천'을 무엇보다 강조합니다. 최근 몇년동안 '소통'이 우리사회의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소통은 "뜻이 통하여 오해가 없다"는 뜻으로 '나의 말 좀 들어라'가 아니라 '너의 말 좀 들어보자'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믿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 집니다.(로마 10.17)" 즉 믿음은 듯는 것,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원활한 소통과 성숙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잘 듣는 것'이 선행돼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하되, 말하기는 더디하고, 분노하기도 더디해야 합니다.(야고 1.19)"라고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신명기 4장의 말씀은 신명기의 핵심으로 '쉐마 이스라엘!' '들어라 이스라엘!' 입니다. 말씀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에, 하느님 자녀로 올바르게 살기 위해 우리 신앙인은 우선 들어야 합니다. 또한 제2독서의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라는 말씀처럼 듣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 이 말씀을 주셨는지'말씀을 통해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실천으로 옮겨야 합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깨달음과 실천이 없다면 이느 '헛들음, 헛믿음,껍데기 신앙'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준엄하게 경고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질타하신 이유도 그들의 열심과 경건함이 하느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며 형식주의와 자기만족의 틀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과 겉치례 아닌, 내적 지향과 순수함입니다.
복음에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왜" "어째서" 라며 제자들을 향해 매몰찬 시선과 잣대를 들이대는데, 신앙인은 타인에게 향한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어 자신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오늘 주일을 지내며 '하느님의 말씀을 주의깊게 듣고, 이를 깨닫고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하는지?' 앎과 믿음, 실천이 균형 잡힌 성숙한 신앙인의 삶을 살고 있는지?'조용히 성찰해 봅시다.
유승우(요셉)신부 교구사무처 비서실장
2012, 9, 2.
수원주보에서 해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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