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atch
휴가 중에 차로 산길도로를 올라가는데 갑자기 끼긱하는 소리에 차를 세우고 내려보니 차가 긁혀 뒷문에서 앞문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상처가 생겨 있었습니다. 조금 속상하기는 했지만 안개 낀 숲길을 지나면서 경관이 너무 좋다보니 차가 긁혀 상처가 생겼다는 사실 따위는 새카맣게 잊어버린 체로 눈에 들어오는 것을 즐기는데 주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깐 휴게소에 들러 쉬는데 차문을 닫으려고 하니 아까의 상처가 문득 보였습니다. 다시 속이 상했습니다. '수리하는데 꽤나 돈이 들겠다,하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조금만 더 주의를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자첵 및 여러가지 짜증나는 것들이 겹쳐 정신을 산란하게 만드는 찰나에 뭔가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까는 분명 차에 생긴 상처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이토록 차에 생긴 상처에 신경을 쓰고 의식을 하는 걸까? 잠시 생각 해 보니 와 닿는게 있었습니다. 내가 훨씬 더 큰 것에 압도되어 있을 때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거기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던 사실이었습니다.
그 순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상처가 아프고 쓰릴 때는 바로 자신이 거기에 묶여 있기 때문임을, 내가 상처의 일부가 될 때는 아프고 쓰리고 힘들고 그것이 전부처럼 보여 그것만 잡고 있느라 다른 것이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상처가 자신의 일부가 될 때는 거기에 묶이기보다 나와 함께 공존해야 할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게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나 자신이 얼마나 많은 상처들에 묶여 있었는가도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 짧은 휴가였지만 그렇게 좋은 선물을 받아 돌아왔습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상처와 싸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하지만 어떤 사람은 긴 시간동안 그것을 놓지 못하며 스스로를 괴로움에 밀어 넣기도 합니다. 치유되어야 할 상처들을 계속 긁고 할퀴고 쥐어짜며 덧나게 하는 모습도 보게됩니다. 아무리 좋은것이 가까이 와도 그 상처만이 눈에 들어와 보지도 듣지도 못한체 거기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리게 됩니다. 사실 살아가면서 몸에 생채기 하나 없이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하면 삶의 일부이고 다른 사람을 치유 해 줄 수 있는 '경험'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과 다른 사람마저 움츠리게하는 무시무시한 '흉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따르는 주님에게도 그런 상처들이 수없이 생겨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거기에 묶이지 않고 우리를 끝없이 받아드려 주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에게 형제라고, 친구라고 부르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 상처 따위가 그분을 막아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상처를 치유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흉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까?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세상
김우정 신부(안산대리구 청소년국장)
2012, 9, 2. 해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