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사정 없는 수녀님
인정사정 없는 수녀님이셨다. 수녀님이 어떻게 그렇게 잔혹할 수 있을까.
수녀님의 이름? 굳이 숨길 생각 없다. 어느 수도회? 그것도 숨길 이유가 없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다. 30년 전 그날 아뽈리나 수녀님은 어린 소년의 가슴에 대못 하나를 쾅 박았다.
강원도 원주의 한 성당 잔디밭이었다. 수녀님이 교리를 가르치고 계셨다. 소년에게 수녀님은 천사였다. '날개 떼어내는 성형수술' 받고 지상으로 내려 온 천사였다. 늘 웃는 얼굴에선 광채가 났다.
그런데 환희가 절망으로 바뀌는 사건이 일어난다. 수녀님의 치마자락 위로 개미 한 마리가 기어 올랐다. 잠시 후 ....개미의 운명은 참담했다. 손가락 튕겨 이마 때릴 때의 그 손 모양을 아는가. 수녀님이 정확히 그 손 동작을 취했다. 그리고 힘껏 개미를 튕겨 날려 보냈다.
소년은 모든 가치관이 붕괴되는 충격을 받았다. 그까짓 일로 뭘 그러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소년은 천사 같았던 수녀님이 보인 엄청난 준 살상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년은 이후 1개월 넘게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이재 환상은 깨졌다. 소년의 마음은 그렇게 한동안 퉁퉁 불어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곧 깨달았다. 늘 웃는 수녀님이라도 가끔 기분 나쁠 때는 웃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수녀님도 때로는 눈물 흘리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우상을 만든다. 이유는? 스스로 만족을 위해서다. 우리는 혹시 내가 보고싶은 대로 상대방을 재단해서 보는 것은 아닐까.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수녀님=천사' '직장상사= 천사' '아내 = 천사' 의 등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상대방에 맞추지 않고 고집스럽게 요구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느님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참 진리의 틀' '참 행복의 틀'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답은 '나 = 천사' 등식을 만드는데 잇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부활 후 천사의 모습으로 변모 된다고 했다.(마태 22,30 참조) 내가 천사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천사의 나라가 된다. 내가 천사의 입으로 말 하면 세상에는 기쁜 소식이 넘처난다. 내가 천사의 손길로 세상을 어루만지면 한 순간에 세상이 치유된다. 이러한 천사됨의 길을 다르게 말하면 사라의 길이다. 그 사랑으로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사람의 'ㅁ'을 깎아 'ㅇ'으로 만들어 '사랑'이 되게 해야 한다.
최근 아뽈리나 수녀님을 만났다. 날개 떼어내는 성형수술 받고 세상으로 내려온 천사 수녀님도 세월은 비켜갈 수 없나보다. 흰 머리가 희끗희끗하다. 불상한 개미 이야기를 하자, 수녀님이 눈 동그랗게 뜨고 "내가 그랬어?" 하신다. 그리고 천사처럼 웃으셨다.
- 우광호(라파엘, 월간 카톨릭 비타꼰 편집장)
2014,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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