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남아프리카 공화국,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바다,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케이프타운에 가면 아프리카의 최 남단,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에 케이프 포인트,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 있다. 하지만 '희망봉'이라는 이름과 달리 그곳은 난류와 한류가 만나 격랑이 일고 파도 소리가 거칠기 그지없다. 또한 희망봉을 오를수록 자욱한 안개는 더욱 짙어져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치 천국을 향해 가는 길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층층 바위를 디디며 엉금엉금 간신히 기어 올라간다.
이윽고 희망봉의 정상, 자연의 세찬 바람이 인간의 몸 마저 흔들어대는 절벽의 끝자락에서 필자는 손에 손을 잡고 가난한 어린양을 희망으로 초대해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돌아올 수 있었다.
희망봉의 원래 이름은 폭풍의 곶이다. 어쩌면 희망은 희망봉의 날씨처럼 미래가 불투명하고 앞이 막막할 때, 세상의 냉랭한 바람이 온 몸과 영혼을 흔들 때 절실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맑고 푸른날에는 숨겨진 희망보다 현세의 행복을 찾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인생의 벼랑끝에서 절망하여 원망과 분노만이 가득할 때, 끝없이 자신 안의 선과 악이 싸우고 격정이 온몸을 휘감을 때, 잔뜩 의기소침하여 자신감 없이 웅크리고 있는 그 곳이 바로 희망봉의 빛이 머무는 자리인 것이다.
케이프 포인트를 내려와 구입한 기념품에 이런 글귀가 세겨져 있었다.
"Never give up, for that is just plase and time that the tide will tun."(Harriet Beecher Stowe.18111896)
이 말을 남긴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의 작가이며 흑인들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준 스토부인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 바로 그런 시점과 위치에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한다."고 말 한다. 삶이 힘겹고 모든 상황이 장애물로 느껴질 때, 단 1초도 더 버틸 수 없다고 느낄 때라도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십자가 성요한은 "사랑의 합일에 이르려면 오로지 희망으로서 하느님께만 의지하여 나아가야한다. 희망없는 영혼은 아무것도 차지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의 뿌리를 내린 그리스도인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될 날을 기다릴 수 있다. 기다림과 쉼을 유유자적하게 즐기며 숨고르기를 잘하는 대나무가 강풍을 무사히 견디어 내며, 엄동설한을 견디어 낸 매화가 가장 먼저 그윽한 봄의 소식을 전해 준다.
우리는 절망과 고통, 시련의 파스카의 밤을 지나서 스치기만 해도 이웃에게 행복을 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향기를 뿜어낼 수 있다. 시련과 역경에 굴하지 않고, 무엇보다 주님께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지혜로운 기다림을 통하여 인내로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 지금의 시련이 지나가면, 이미 모든것을 예비해 놓고 기다리시는 '야훼이레'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렇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로마 8, 25). 절대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며칠 전 휘황찬란한 보름달이 떴다. 아름다움을 만끽 하려는 찰라, 금세 회색빛 고층 건물이 달의 환한 미소를 가렸다. 하지만 모퉁이를 돌아 좁은 길을 지나고 나니 여전히 달은 따뜻한 미소로 동행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깜깜한 인생의 길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고 끝없이 절망의 터널이 계속 되더라도 터널 밖에는 반드시 주님이 우리를 자애롭고 인자한 음성으로 힘내라고 응원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화 'The passion of the Crist(그리스도의 수난)'에서 예수님께서 무거운 십자가의 길을 걷다가 넘어지신 후 어머니와 만나는 장면이 있다. 성모님께서는 두 손을 벌리며 "I'm here." 라고 말씀 하신다. 우리가 세상에서 넘어지고 깨질 때, 예수님께서 어깨를 토닥이며 말씀 하신다. "나 여기 있다.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다." 예수님께서는 너머진 우리를 눈물 가득 애처롭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연민의 예수님, 스스로의 힘을 키우라고 격려해 주시는 사랑의 예수님임을 잊지 말자.
새롭게 시작할 때 이다. 기름진 땅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놔두는 휴경지가 있다. 하지만 신앙의 휴경기가 길어지면 잡초가 자라나고, 돌멩이와 자갈이 쌓이다가 결국에는 황무지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마음의 밭을 갈아 엎을 때이다.
가끔 주님께서 필자에게 말씀 하신다..
"너 게으른자야, 언재까지 잠만 자겠느냐? 언재 잠에서 깨어 일어나겠느냐(잠언6.9)
"오소서, 파라클리토(Paracletos, 위로자) 성령님,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저희를 비추어 주시어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용기 있게 다시 시작하게 하소서. 아멘"
2012, 4, 1.
수원주보 "위로의 샘" (서정복 안나)에서
해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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