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여행기
낙원회 회원 9명(가족포함)이 7월 말일, 혹서기에 백령도 여행을 떠났다. 그날이 39.6도로 서울 최고기온을 갱신한 날이었다. 그리고 익일 8월1일은 하룻만에 40도가 넘는 온도로 다시 기록갱신을 한 날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30도정도의 백령도에서 피서 잘 하고 왔습니다. 우리끼리 가서 죄송합니다. 그러니 다음에는 어디를 가든 꼬~ㄱ 함께 합시다.
백령도는 삼국유사, 고려사 등에 의하면 곡도(鵠島)라 불렀으며 고구려땅에 속해 있었다. 곡도란 온갖 철새들의 천국이라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그러다가 고려 태조가 백령(白翎)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그후 여러과정을 거쳐 조선말엽에 전국이 23부로 구성될 때 후주부에 속해 있다가 13道가 설치되고 나서 일제 말까지는 황해도 장연군 백령면으로 내려왔다. 해방후 38선이 남북으로 가른 후 백령도는 황해도 옹진군 백령면에 속해 있다가 1955년 인천광역시에 편입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인천시 편입과정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6,25동란 후 1953년 휴전협정 체결 직전까지는 황해도 바로 남쪽에 있는 현재 북한 치하의 모든 섬들이 유엔군과 우리 국군이 점령하고 있었으나 휴전협정시 대한민국과 북한의 서해 및 동해 접경의 경계선, 아군함정 및 항공기 초계활동의 북방한계를 규정해 남북 양측간에 일어날 수 있는 충돌을 방지한다는 정전협정의 실질적인 이행에 목적을 두고 백령도 북쪽에 있는 섬은 북한에 양보하고, 해상경계선이자 군사분계선, NLL(northem Limit Line)을 서해5島(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와 북한지역간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한강하구로부터 백령도 서북방까지만 연결하여 1953년 8월 30일 확정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백령도는 면적: 51,18 Km2로 대한민국에서 8번째로 큰 섬이다.
세대수: 3,118세대
인구: 5,556명(男3,263명. 女2,293명. 2018년 4월 말일 현재)
현역군인(육해공군):약 5,000여명 상주
학교: 초등학교 2개. 중학교 1개. 고등학교 1개
인천까지는 228 Km.. 북한 황해남도 장연군 해변까지 직선거리 10Km의 거리에 있는 북한에서 가장 갖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최 북단에 홀로 떠 있는 바다의 종착역 백령도 입니다.
우리는 인천연안부두 여객선 터미널에서 8시30분, 백령도에 대한 꿈을 안고 코리아킹 여객선에 몸을 싣고 백령도로 향했다. 12시 20분경에 백령도 용기포항에 도착 오찬 후 오후 2시부터 관광이 시작되었다.
아래 백령도 지도에 붉은 색 동그라미로 표시한 곳이 우리가 갔던 곳입니다.좀 희미합니다만....
첫번째 관광지가 등대해안이었다.
저 멀리 산 꼭대기에 등대꼭지만 보인다. ↓
아래 모래밭이 백령도 사곶사빈(천연비행장)이다.
천연기념물 제 391호로 지정된 사곶해변은 전 세계에서 2곳밖에 없는 천연비행장으로 나폴리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곳이다. 한때 군부대 비행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이곳은 모래알맹이들이 넓이 300M, 길이 3Km의 넓은 백사장을 이루고 잇어 피서지로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모래위로 자동차도 다니고 비행기도 이착육을 하는 비행장인데 우리가 탄 자동차가 달리는데 모래사장이란 느낌이 전혀없다. 걸어봤을 때 느낌 또한 경쾨하고 맨발로 계속 걷고 싶었다. 정말 유쾌,상쾌,경쾌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서 차내에서 한 카트 찰깍.........멀리보이는 경치도 장관이다.↓
백령도는 섬이면서 농지가 엄청 넓다. 안내 겸 기사님의 말로는 전체주민의 50%이상이 농사를 짓는 농민이고, 섬인데도 어민은 불과 10% 정도라고 한다. 이 넓은 농토를 보니 이해가 간다.
두무진은 백령도 북서쪽 4Km에 걸친 해안선을 따라 오랜 세월동안 파도와 비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높이 50여m내외의 규암절벽을 일컫는 이름이다. 두무진이란 명칭은 '뽀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김새가 머리털 같이 생겼다'하여 두모진(頭毛鎭)라 칭하였다가 뒤에 '장군머리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하여 두무진(頭武鎭)이라 개칭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두무진을 이루고 잇는 암석들은 원생대 진현통(8억5천만년 전)에 속하는 백색,암회색 사암 또는 규암으로 구성되어 있다.그리고 선대암 남쪽 약 80m지점에 있는 만입부의 파식대에는 밀물 때 바닷물 거품이 작은 만입부에서 불어오르는 돌개바람에 의해 높이 솟아올라 함박눈 처럼 내리는 현상이 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나는 선박을 타고 이 두무진을 지나갈 때 기암괴석에 매료되어 많은 사진을 찍었읍니다만 다 올리지는 못하고 몇장만 올렸습니다.
통일기원비↓
제2의 해금강 또는 금강산의 총석정을 옮겨놓았다고 할 만큼 기암절벽이 많은 두무진은 백령면 연화3리 해안지대이다. 신선대,형제바위, 장군바위, 코끼리바위 등이 푸른 바닷물과 어울려 아름다운 비경을 이룬다. 두무진을 둘러보다 운이 좋으면 물개바위위에 천년기념물로 지정 보호받고 잇는 물범이 수면에 잠길 듯 옹이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잇다.
형제바위 ↓
두무진 선대암(명승 제8호). 광해군이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라고 극찬한 바위
사진 한 가운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북한의 황해남도 장산곶 ↓
백령면의 역사
엣날 황해도에 살던 사또의 딸이 사랑을 하게 되었으나 사또는 선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두사람이 계속 만나자 딸을 몰래 귀양 보냈고 애을 태우던 선비에게 꿈에서 백학이 그녀가 있는 곳을 가르쳐 줬다. 훗날 사람들이 '백학이 알려줬다'하여 '백학도'라 부르다가 오늘날 흰백(白)과 날개령(翎)을 써서 백령도라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Origins)입니다.
두무진 전경중에 하나로 코끼리 바위. 코끼리가 물을 마시 있는 모습. ↓
천암함 46용사 위령탑 ↓
중화동 교회
1896년에 세워진 중화동 교회는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다. 역사적 가치가 큰 성지로 교회 발전사를 재조명함은 물론 관광성지로서의 가치가 높다. 바로 옆에 위치한 백령기독교역사관은 100년 넘는 한국기독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잇다.
백령 연화리 무궁화
천년기념물 제521호인 연화리 무궁화는 백령도내 1896년 건립된 중화동 교회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형이 우수하고 높이가 6.3m로 현재 알려진 무궁화 중 가장 크며 꽃이 홍단심계로 순수 재래종의 원형을 보유하고 있다. 교회 역사만큼 오랜시간 가지 하나하나에 고풍스러운 멋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이번에 봤더니 일부 가지에만 잎이 피고, 잎이 보이지 않은 가지가 너무 많아 안타까운 생각에 마음이 아프네요. 정성어린 관리 부탁합니다.
용트림 바위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갈매기 가마우지 서식지 이기도 하다.↓
콩돌 해안
백령도의 지형과 지질의 특성을 나타내고 잇는 곳 중의 하나로 해변에 둥근 자갈들로 구성된 퇴적물이 단구상 미지형으로 발달한 해안이다. 콩돌해안은 백령도 남포동 오금포 남쪽 해안을 따라 약 1Km정도 형성되어 잇고 내륙쪽으로는 군부대의 해안초소와 경계철조망이 설치되어 잇다.둥근 자갈들은 백령도의 모암인 규암이 파쇠 되어 해안의 파식작용에 의하여 마모를 거듭해 형성된 잔 자갈들로 콩과같이 작은 모양을 지니고 잇어 콩돌이라 하고 , 색상이 백색,갈색,회색 적갈색,청회색 등으로 형형색색으로 이루고 잇어 해안경관을 아름답게 하고 잇다. 콩알만한 크기의 작고 둥근 자갈들이 해안에 지천으로 깔린 화동의 콩돌해변은 그 돌을 밟는 것만으로도 신비한 경험이며 맑고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룬 이색적인 해변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정취를 느낄 수 잇어 가족과 해수욕 하기에는 그만이다.
콩돌입니다. 저 위를 맨발로 걸었더니 너무나 시원시원해서 계속 걷고만 십어졌다.↓
심청각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던진 인당수와 심청이 환생했다는 연봉바위 등 백령도가 심청전의 무대엿던 사실을 기리기 위해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동시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심청각을 건립하여 전통문화를 발굴, 계승함과 아울러 "효"사상을 함향하고 망향의 아픔을 가진 실향민에게 고향을 그리는 대책사업으로 심청이 환생장면등을 전시했은 뿐만 아니라 심청전에 관련된 판소리,영화,고서등을 전시하였다.
오늘도 우리 군은 국토바위 임무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
우리는 1박 2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13시 30분 인천행 여객선 코리아킹 호에 몸을 싣고 백령도를 떠났다. 아쉬움을 남긴체........나는 이번여행에서 백령도를 보고 우리 대한민국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다.특히 넓은 들판을 보고 앞으로 더 큰 희망을 갖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세계에서 2곳밖에 없다는 사곶해변의 천년비행장, 콩돌해안,두무진의 암석들은 세계어디를 가더라도 보기 힘드는 아름다운 기암괴석들이다. 우리는 풍부한 관광자원을 갖고있다. 우리는 희망이 있다. 꿈을 버리지 말고 더 큰 꿈으로 키워가야만 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북에서도 탐내지나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네요. 그래도 길은 분명 있을 겁니다. 꿈을 가지고 있는 한........
여러가지로 준비하고 진행해 주신 하나투어의 매크로투어 홍사장님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함께한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 8, 1.
승 범
'승범(承汎)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추의 낙옆을 밟으며 (0) | 2018.11.10 |
---|---|
몽골 여행기 (0) | 2018.08.25 |
역사에서 배우자 (0) | 2018.07.09 |
인조의 삼궤구고두례 (0) | 2018.03.24 |
터키 여행기 (0) | 2018.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