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 이야기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문제를 냈다.
"내 일도 감당하기 어려워 남의 어려움을 돌볼 여유가 없다는 뜻의 속담은 ?"
정답은 "내 코가 석자"였다. 아이들이 문재가 어렵다며 힌트를 달라고 아우성 쳤다. 그러자 선생님이 말했다. "속담에 '코'자가 들어간다." 아이들의 답은 다양했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고, 휴지도 코 풀려면 안보인다.' 그나마 이정도는 이해할 만했다. 가장 엉뚱한 대답은 바로....'소 잃코 외양간 고친다.'였다.
내코가 석자였다. 20년 전인 1994년 1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서울에 처음 도착한 내가 그랬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대도시를 처음 경험하는 강원도 시골 촌놈은 주변사람을 돌아볼 여유없이 생존의 문재에 매달려야 했다.
문재는 또 있었다. 어른들은 귀에 못이 밖히도록 이런 말을 했다."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다. 늘 조심해야 한다." 이 말의 위력은 대단했다. 소매치기가 기승을 부린다는 말에, 길 거리를 걸어갈 때 늘 주머니 속 지갑을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울 사람이라면 일단 의심의 눈으로 봤다. 코가 석자였던 나는 다른 사람이 코 베어갈까 코를 꼭 잡고 살았다.
그렇다면 20년 세월은 나를 어떻게 변화 시켰을까. 코 베어가는 주체인 서울사람이 됐으니, 이재 적어도 코 베일 염려는 덜어도 되지 않을까.
천만에, 이 사회에선 타인을 밎지 못하고 의심하는 경향이 과거보다 더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서울에서만 코를 조심하면 됐다. 하지만 이재는 혼자있는 방 안에서도 코를 꼭 잡고 있어야 한다. 스미싱 때문에 모든 수신 전화를 일단 의심 해야 한다. 직장에서도 조심해야 한다. 살벌한 생존경쟁 탓인지, 아니면 무너진 인성 탓인지, 밀고 당겨주며 함께 살아가는 직장 문화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경쟁적으로 손해 보지 않으려고 버틴다.
그렇다면 우리는 코 베이지 않기위해 코를 꼭 잡고 살아가야하는, 이 불신의 싸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욕망이 충족 받으면 다른 사람의 욕망은 희생된다. 여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서로 많이 가지려 하기에 반목하고 싸운다. 많이 가지려고 싸우는 것은 아마도 내가 가진 것이 적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내코가 석자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사실 우리는 풍요롭다.
"나는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의 샘에서 솟는 물을 거저 주겠다"(묵시 21.6)
이미 모든 것을 받앗다. 주님이 거저 주셨다. 코 베이지 않기 위해 코를 꼭 잡은 손의 힘을 풀자. 코를 막고 있기 때문에 거저 받은 풍요로운 공기가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받고 있는데 조금 빼앗기면 어떤가.
소 잃코 외양간 고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의 코는 석자가 아니다.
- 우광호(라파엘 월간 가토릭 비타꼰 편집장)-
2015년 5월 3일
천주교수원교구 '위로의 샘' 에서
해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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