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범(承汎)마당

저녁이 있는 삶

승범(承汎) 2012. 8. 13. 15:21

 

                                     저녁이 있는 삶

 

     나는 오늘 어느 야당 정치인이저녁이 있는 삶을 정치구호로 했다는 칼럼을 읽었다. 나도 관심이 많았던 말이라 흥미를 갖고 읽었다.“저녁이 있는 삶이란 저녁이 여유가 있고 즐거운 삶이란 뜻일 것이다. 그래서 이 구호는 소설의 제목도 아니고 시의 제목도 아닌 전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치구호라면 직설적인 표현으로 저녁이 즐거운 삶란 표현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이 말은 추상적인 표현이라 정치구호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1960년대 중 후반부터 70년대 중 후반에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과연 저녁의 삶이 어떠했을까? 그 시절에는 직장을 구한다는 자체도 힘들었을 뿐 아니라 내가 전공한 분야, 내가 하고 싶은 일꺼리 찾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였다. 밥을 먹을 수 있는 자리라면 무조건 오케이 하고 들어갔다. 또 거의 대부분의 직장이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해야 했고 야근은 필수였다. 야근을 해도 야근수당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 굶기지 않겠다는 야무진 생각으로 몸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봉급 날이면 봉급 봉투 들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그렇게 가볍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봉급봉투가 얇아도 말이다. 거듭되는 야근과 과로로 지칠 만큼 지친 몸이라도 일과 끝나고 늦은 시간에 길거리 포장마차 집에서 오댕국물 안주에 소주 한잔이면 피로는 어디로 도망가고 없어지고, 주거니 받거니 몇잔 하고나면 온 세상 다 얻은 기분으로 희희낙락 하며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또 내일을 약속할 수 있는 기대와 기쁨도 누릴 수 있었다. 막연한 것 같지만 희망도 있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이것이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고 살아 왔을 것이다. 아니 그저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그렇게 살아 왔을 것이고 그것이 즐거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 온 것이다.

위에서 내가 얘기한 저녁이 있는 삶과 정치인이 말한 저녁이 있는 삶과 무엇이 다른가? 완전히 다르다. 즉 후자는 가족과 함께 하는저녁이 있는 삶일 것이다. 그러나 신문기사의 내용을 빌리면 피에르 에르메씨는 프랑스에서 제빵제과업으로 크게 성공한 인물로 부와 명예를 함께 얻은 인물이다. 런던, 도교, 두바이에 분점이 있어 출장이 잦지만 주말만큼은 철저히 가족과 함께 지낸다. 그의 주말일과는 오전엔 중학생 딸, 아내와 함께 거리 장터에 가서 유기농   채소와 생선을 직접 사고,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다. 토요일 오후의 주된 일정은 미술관 나들이다. 일요일 오전엔 집에 부부동반으로 손님을 초대해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며 수다를 떤단다. 정말 저녁이 있는 삶인 것 같다. 부럽기도 하다. 그러면 이것이 위의 정치인이 말한 저녁이 있는 삶일까? 나는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떤가? 유례없는 불황을 맞아 백화점들은 설립후 처음으로 매출, 영업이익 모두 마이너스 성장이라고 난리고, 어떤 업종은 부도 업체가 속출할 것 같다고 한다. 자영업자들도 여기저기서 문닫는 소리가 요란할 정도다. 대기업들은 비상사태라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회사가 많단다. 그런 가운데서도 사교육1번지 강남에서는 휴가철인데도 교통체증이 평소보다 오히려 심하단다. 왜 이럴까요? 사교육1번지라 수강생들을 실어 나르는 차량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이처럼 미술관 대신 학원을 가는 강남 사람들은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걸까요? 아니면 더욱 미래가 밝은 내일이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걸까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강남에 살겠다고 강남으로 몰려들까요?

 

 한 오십대 후반의 친구는 IMF때 명예퇴직을 하고 제2의 직장생활을 하겠다고 이 회사 저 회사를 기웃거리며 이력서를 제출해 봤다. 그러나 그때는 오십대 중반이면 구조조정이란 미명하에 명예퇴직이란 이름으로 쫓겨나오던 시절이라 이 나이때의 사람들은 직장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보다 힘들던 시절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부인과 함께 조그마한 대중식당을 차리고 밥장사를 시작했다. 자금의 여유가 있었다면 몫 좋은 골목에, 번듯한 장소에서 개업 했더라면 성공했을지도 모르지만 보잘 것없는 퇴직금으로 그에 걸 맞는 장소를 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2년 남짓 버티다가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이 친구는 직장생활을 할 때는 정말 금슬 좋은 친구였다. 부부간 가끔은 외식도 하고 주말이면 운동도 하고 영화관도 가면서 정말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식당 문을 닫은 후는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지만 육십대 중반의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살아가면서 하루는 저녁이 즐겁고, 일주일은 주말이 즐겁고, 일년은 겨울이 즐겁고, 일생은 노년이 즐거워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옳은 얘기라고 생각 된다. 나는 육칠십 년대 직장 생활을 해 본 사람으로서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았다고 큰 소리 쳤지만 지금의 잣대로 보면 정말 바보 같은 삶이었다. 가족과 함께한 즐거움이 송두리체 빠져버렸다. 그래서 이것이 부부싸움의 빌미도 되었고, 아이들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시대배경이나 우리집 가정형편을 감안 한다면 그래도 용납할 수 있었기에 즐거운 삶을 누리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하루의 저녁이 즐거운 삶이 되려면 하루의 삶이 어떤 삶이어야 할까?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일을 생각 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일터로 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터에 도착하면 자기 일에 전력투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는 어떤 잡념도 없이 내가 하는 일이 예술품이라고 생각하고 훌륭한 작품을 창작하는 기분으로 온 정력과 사랑을 쏟아 부으면서 일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생각 조차도 할 겨를이 없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내가 만든 예술품이, 아니 내가 만든 제품이 어떤 제품이 나올까?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퇴근길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다. 퇴근길 발걸음이 가벼우면 친구를 만나 소주를 한잔 해도 즐거울 수 밖에 없고, 집에 도착해서 프랑스의 제빵제과 업체의 사장처럼 유기농 채소와 생선, 유기농 과일에, 브런치를 먹지 않아도, 아내가 만들어 준 된장찌개에 김치만이라도 맛있는 식사라면 이것이 바로 저녁이 즐거운 삶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낮에 내가 한 일에 기대와 희망이 있어야 저녁이 즐거운 삶이 될 수 있다. 이런 하루하루의 삶이 지속되면 富도 저절로 따라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공짜가 없다. 내가 노력한 만큼 이루어진다는 확실한 신념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체조 남자 도마에서 금메달을 딴 양학선 선수처럼 말이다. 나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실인 것이다. 누구나 이런 하루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년이 되고, 일생이 된다면 노년이 즐거운 일생이 되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2012,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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