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처럼 받아드리기만 해서야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남보다 앞서서 나누어 주려고 하는 자의 주위에 모여든다.나누어 준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갈릴리 호수와 사해(死海)는 그러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있다.
이스라엘에는 두개의 내해가 있다. 하나는 갈릴리 호수이며 또 하나는 死海다. 사해는 해면 아래 392m에 있으며 그 부근 일대는 온통 사막이다. 사해에서는 아무 것도 살지 못한다. 그러나 갈릴리 호수는 민물이기 때문에 물고기가 살 수 있다. 여기서 예수가 고기를 낚은 사실로도 유명하다. 오늘날에는 "성 베드로의 물고기"라고 해서 생김새는 괴상하게 생겼으나 맛이 좋은 물고기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어서 호수 주위에는 많은 휴양시설과 레스토랑이 늘어 서 있다. 호수 기슭에는 나무들이 많이 있어 수면에 가지를 드리우고, 세들이 모여들어 지저귄다. 생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갈릴리 호수와는 달리 사해에는 어떤 생물도 살고 있지않다. 주위에는 나무도없고, 새 소리도 들을 수 없다.사해 위에 떠 도는 공기조차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막에서 살고 있는 동물이 물을 마시려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사해를 "죽음의 바다"라고 이름 붙였다.
갈릴리 호수는 요르단강에서 물을 받아 드리고 있다. 그러나 사해처럼 그냥 물을 모아 두지는 않는다. 갈릴리 호수에서 흘러 나간 물은 요르단강을 지나 사해로 들어 간다. 한편 사해는 물이 흘러 나가는 출구를 지니지 않고 있다. 받아드린 것은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유대의 현인들은 갈릴리 호수는 받은 것 만큼 남에게 주기 때문에 언재나 생기가 넘치고 있으며, 사해는 모든 것을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생물이 살지도 않고 가까이 오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해는 자기에게로 오는 물의 한 방울, 한 방울을 모두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해는 남에게 줄 줄을 모른다. 그래서 죽어 있는 것이다.
살다보면 이러한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물고기도 살지 않고, 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모여 들지도 않는다. 받을 줄만 알고 나누어 줄 줄 모르는 사람이 되기 보다 갈릴리 호수 같은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영원히 살 것 같이 배우고 내일 죽을 것 같이 살아라" ( M,토게이어 저) 에서
요즘 우리 한국사회가 다시 한번 되돌아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자본주의 4.0사회가 바로 갈릴리 호수와 같은 사회가 아닐까요........?
2011, 12, 20.
海 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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