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샘

사랑의 항아리

승범(承汎) 2016. 7. 24. 15:14

 

                                                                 "사랑의 항아리"

      세월의 풍파로 훼손된 토기나 도자기와 같은 문화제를 복원하려면,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과정을 거처 보존처리가 이루어진다. 치료 후에도 빛, 온도, 습도를 적절하게 유지시켜 손상을 예방하고, 해충이나 외부요인을 잘 차단해 문화제의 수명을 연장시킨다.

      그런데 조각난 토기를 붙이는 복원 체험 과정이 흥미롭다. 먼저 토기의 밑바닥부터 조각을 차분히 맞춰가며 붙여나가야한다. 이때 도움이 되는 단서는 토기의 문양과 방향, 깨진 면이다. 주의할 점은 아랫부분이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윗부분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뒤틀어진다. 그 결과 마주한 두 접착면의 틈새가 벌어지고, 잃어버린 작은 조각은 숨구멍을 남긴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속절없이 깨졌을 때에는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문화제처럼 노력으로 다시 복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최신 기술을 동원하여 상대방의 심리를 분석하고 온갖 기교를 다 부려도,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은 물건과 달리 '감정'이라는 골이 깊이 패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자존심, 열등감, 교만, 두려움, 질투, 분노, 등의 감정은 날씨, 기분, 건강상태, 분위기,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한다. 또한 변덕스러운 감정은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돌덩이같이 쌓여 종기처럼 곪아간다. 그래서 가령 의무감에 화해를 했더라도 불현듯 스치는 서운한 감정이 오히려 관계를 서먹서먹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회복의 의지는 오랜 시간 함께 나눈 소중한 추억과 고마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생텍쥐페리(Saint-Exupery)의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보낸 시간이야."

      흔히 집에서 쓰는 접시가 깨지면 잠깐 아까워하다가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러나 값지거나 소중한 의미가 담긴 접시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다시 붙이려고 애를 쓸 것이다. 하물며 참된 관계는 그 어떤 보물보다 귀하지 않던가. '사랑'이라는 마음 항아리에 상처가 생기면 작은 틈색가 생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사랑이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하나둘씩 구멍이 늘어가고 그 크기가 점점 커지면, 절망과 분노라는 압력에 의해 마음 항아리는 산산조각이 난다. 설상가상으로 항아리의 파편들이 곳곳으로 튀어 몰래 숨어 있다가 누군가를 할키고, 깊은 상처를 주는 무기가 된다. 그리고 그 분노의 독화살은 부메랑이 되어 악순환의 고리로 복잡하게 얽힌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의 복원을 위해 내적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나부터 하느님과의 과계를 회복해야 한다. 치유자이신 예수님의 거룩한 사랑과 자비에 의탁하자. 산산히 부서진 사랑의 조각들을 전부 맡겨 드리고, 따뜻함과 평온함을 되찾자. 그리고 '용서라는 강력 접착제를 간절히 구해서, 마음의 가장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살펴가면서 그분이 이끄는 방향대로 흩어진 마음 조각 하나하나를 정성을 다하여 붙혀 나가야 한다. 주님께서 부족한 부분은 강화시키고,뒤틀려 생긴 틈새와 숨구멍은 메꾸어 주실 것이다. 그래서 복원된 빈 항아리에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이 다시 흘러 넘치게 될 것이다.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은 「사랑의 기술」에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며,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며,  삶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의 회복을 위해 인고의 시간과 노력, 기도와 희생이 절실한 때이다. 천금같은 새로운 화해의 기회를 붙잡자. 그 후에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드리며, 대화와 소통을 통해 적절한 거리와 균형, 배려를 유지해 상처를 예방하는 것은 우리의 숙제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되어, 서로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축복의 관계로 한걸음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

      "오소서, 성령님, 거룩한 사랑의 영으로 소중한 누군가를 지켜낼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아멘

 

                                                                   -서전복 안나(동양화가, 미술교육가)-

 

                                                                         2016,  7,  3.

                                                                         천주교수원교구 "위로의 샘"에서

                                                                                           承   汎 (프란치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