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위에 쌓인 먼지
신발위에 쌓인 먼지
사례 1. 43세의 한 성직자가 심한 우울증을 격었다. 신자들의 오해와 동료 사제들의 무관심 등 다양한 이유 때문이었다.
일주일 동안 방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눈물조차 마를 정도로 심하게 앓았다. 신부님 신발에는 먼지가 하얗게 쌓였다.
사례2. 나이 54세, 남편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20여년 동안 살던 집에서 쫓기듯 나와 월세 원룸으로 이사했다. 나락의 정중앙에서 그녀는 죽음까지도 생각했다. 우울증 때문에 3개월 동안 아무도 마나지 않고 집에서만 보냇다. 신발위에 먼지가 하얗게 쌓였다.
우리는 왜 고통받는가. 축복으로 주어진 삶 안에서 우리는 왜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신부님과 자매님께 위로해 준다며 간신히 생각해낸 말...."악인이 아니라 의인이니가 고통받는 겁니다." 괜한 말 했다 싶었다. 지금 당장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말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고통을 잘 받아 넘기라는 말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고통을 칼로 자르듯 돌파하며 나아갈 힘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마태오 복음 15장 21-28절에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 여성이 예수님께 매달렸다.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하지만 응답은 곧바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자 여인이 더욱 간절히 애원했다.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감탄사를 터뜨린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그 순간 여인의 소망은 이뤄졌다.
여인은 자신의 상황을 인정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극한까지 낮췄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자신을 개만도 못한 존재라고 낮춤으로써 구원받는 인간으로 격상됐다. 그렇게 여인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엇다. 여기서 우리는 '인정'과 '수용', '낮춤'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감기처럼 자잘한 고통들을 달고 산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실내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 감기는 밖으로 나가 한바탕 뜀박질 하면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래! 밖으로 나가자.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자. 햇볓이 편안할 것이다. 낮춤과 겸손의 신발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야겠다.
-우광호(라파엘, 월간 가톨릭 비타콘 편집장)-
承 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