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샘

마음의 평화를 빌며

승범(承汎) 2015. 12. 13. 22:48

                                                       마음의 평화를 빌며

 

      "빵이랑 쿠키 구웠는데, 먹을래?"

      그날은 대한민국 역사 이래 이런 일 다시 없을 사건이 있던 날 아침이었다. 이런 날은 대체 어떻게 오프닝멘트 첫 운을 떼야할지? 믿기지 않는 뉴스를 몇 번씩 확인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겨를도 없이, 당장 써서 넘겨야 할 라디오 프로그렘의 오프닝멘트가 걱정이었다. 전례없는 일이라 이렇게 막막해 보기도 처음, 시간은 자꾸 가는데 한참을 그냥 멍하니...... 모니터만 노려보고 있는데, 날아든 이웃사촌지간이던 선배의 문자매세지가 그랬다. "빵이랑 쿠키 구웠는데 먹을래?" 아니 지금 나랏님이 탄핵소추를 당한 이 판국에 뜬금없이 빵이랑 쿠키라니? 어이없어 하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을 열자 "먹고, 일하렴!" 선배는 빵과 쿠키를 안겨  주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그 날 이후 종종, 그날 아침의 갓 구운 빵과 쿠키를 떠올리곤 한다. 그날 만큼은 아니더라도, 복잡한 세상사에 머리와 가슴이 복잡해 질 때, 갑자기 날아든 엄청난 사건사고 소식에 당장 넘겨야 할 생방송 오프닝 멘트는 대체 뭐라 운을 떼어야 할지 막막해 질 때,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최근 들어 어째 그런 일이 갈수록 잦아지는 것 같다. 지난 11월의 어느 주말 역시 그랬다. 파리에서 날아든 무참한 테러소식,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의 민중총궐기대회 관련 소식 등 온통 뒤숭숭한 실시간 뉴스를 검색하다가, 그날의 빵과 쿠키를 떠올리며 손에 든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대신 책을 펼처들었다. 넬로 스카보의 <베르골료리스트(독재시절 프란치스코 교황이 살려낸 사람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 군부 독제 정권 시절 젊은 프란치스코 교황, 즉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신부가 박해받는 사람들을 숨겨 주고 해외로 망명시켜 준 이야기다.

      "당시 베르골료 신부는 자신의 자리에서 가능했던 일들을 했습니다." 해방신학 분야의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산 미겔대학 철학 및 신학 학부의 철학연구소 소장, 후안 카롤로스 스칸노네 신부는 베르골료가 자신이 기습체포되는 것을 막아주었다며 이렇게 이야기 한다. 스칸노네 신부 뿐 아니라 '베르골료 리스트'에 올라온 이들은 다들 같은 이야기를 한다. 서른 여섯살에 예수회 관구장에 임명돼 마흔살이었던 베르골료 신부가 독제체제하에서 자신들의 위태로운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가능했던 일들을 했다'고. 그것은 아마도 그를 통해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도 그러한 것 처럼.

 

      이번 대림시기, 아기에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책을 읽고 난 후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수제성탄카드'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날 아침, 선배가 구워 온 빵과 쿠키 만큼이나 뜬금없는 일일지 모르겠지만, '수제성탄카드만들기'는 최근 몇 년간 개인적으로 해 온 성탄준비의 일환이다. 지접 만든 '수제성탄카드'중 일부는 불우이웃 돕기 기금마련을 위한 행사에 보내고 나머지는 지인들에게 보냈는데, 지난해에는 바쁘다는 핑계(그래, 솔직히, 핑계 맞다!)로 하지 못했다. 받는 이가 누가 됐든 한 장 한 장에 기도의 마음을 담아서 정성껏 만들다 보니 우선 내 마음이 착해진다.카드를 받는 이들의 마음도 착해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아기 예수님이 전하는 참평화를 나눌 수 있다면 적어도 그만큼은 세상도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날 아침, 내 마음에 평화를 나눠준 뜬금없는 듯 실은 매우 사려깊었던 선배의 갓 구운 빵과 쿠키처럼 말이다.***

                                            2015,  12,  6.

                                                      - 방은영 마리안나(방송작가)-

 

                                                                         천주교수원교구 '위로의 샘'에서

                                                                                                          해 봉 프란치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