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샘

'미치다'에 대한 묵상

승범(承汎) 2015. 9. 7. 18:16

                                                 ' 미치다'에 대한 묵상

 

      <미치다> 1,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된다.

                     2,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다.

                     3, 공간적 거리나 수준 따위가 일정한 선에 닿다.

                     4, 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얼마 전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완역본을 읽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떠오른 단어는 '미치다'였다.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미치다'의 뜻 1과 2에서는 돈키

호테를, 3과 4에서는 예수님을 찾을 수 있었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나란히 들판을 걷고 있었다. 멀리 30~40여개의 풍차가 

나타났다. 1500년대 후반 당시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하

 돈키호테는 익숙함을 뒤틀어 보는 인물이다. 돈키호테의 눈에는 풍차가 사악한

거인으로 보였다. 그래서 풍차로 돌진했고, 결국 큰 부상을 입는다.

      세상 사람들은 풍차를 풍차로 보는데, 돈키호테 혼자 풍차를 풍차로 보지 않는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돈키호테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제대로 미쳤다.

      돈키호테가 미친 것은 현실 감각이 떨어져서일 것이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현실 감각이 뛰어나면 행복할까? 현실에서 오는 수많은 상처들을 보듬어 주기위해선

돈키호테의 환상이 조금 얹어져야 하지 않을까. 돈키호테는 산초 판사에게 이런 말을

한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 미칠 수 잇다면 감사할 일이네."

      여기서 돈키호테가 말하는 '이유 없이 미치는 것'은 본인이 의도해서 미치는 것'

을 말한다. 하느님을 위해, 절대덕 가치를 위해, 정의를 위해 열광적으로 미치는 것이

다. 조건이 없는, 무조건적 희생과 도전을 위해서 돈키호테는 미쳐야 했다. 미치지

않았으면 어떻게 혼란한 세상을 구하겠다며 단신으로 뛰어들 수 있었겠는가. 돈키호

테는 세상과 타협하면서 몸의 편안함을 추구하다가는 미칠 것 같아서 정의와 사랑에

미쳤다.

      세례자 오한도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마테11,18; 루카 7,33) 막달레나도 한때

미친 여자였었다.(루카 8,2 참조) 심지어 예수도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요한 10,20)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고난을 자청하는 예수가 미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예수

의 현실 감각은 제로였다. 돈키호테였다.

 

      우리는 혹시 결승점에 못 미쳐서 넘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국문 들어가는 사

람들의 성적표에 못 미치는 것은 아닐까. 하느님이 아무리 목청껏 우리를 불러도 그

소리가 우리 마음에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장 일어나서 사랑의 행동을 하라는 예수님의 명령 압박이 지금 우리에게 미치고

있다. 그 명령은 손에 미치지 않는 더 높은 곳에 있는 사과를 따라는 것이다.

      예수님 말씀에 미치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 가질 필요 없다. 예수님께서 "내 힘이

미치는 한 나를 힘껏 돕겠다"고 말하고 있다.(마테 28,20 참조)

 

                                                 2015,   9,   6.

                                         천주교수원교구 '위로의 샘'에서

                                                                             해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