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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승범(承汎) 2015. 6. 21. 13:16

                                                             

                                                                       남한산성(南漢山城)

 

 

 

 

 

      우리부부는 오늘 금년들어 세번째 남한산성 등산을 했다. 이곳의 등산은 등산이라기 보다 역사탐방이라는 것이 옳을 것만 같다. 남한산성은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처있으며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민족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기능해 온 장소로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었다.

      백제가 하남 위래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재인들에겐 성스러운 대상이자 진산(鎭山)으로 여겼다. 남한산성 안에 백재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 숭렬전(崇烈殿)이 자리잡고 있다.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2년에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침입을 격퇴한 곳이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선조임금에서 순조임금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다.

     그러나 남한산성은 주로 병자호란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인조14년(1636)에 청나라가 침략해 오자 인조는 이곳으로 피신하여 항전하였으나 왕자들이 피신해 있던 강화도가 함락되고 패색이 짙어지자 세자와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 나가 치욕적인 항복을 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남한산성은 인조2년(1624)부터 오늘의 남한산성 축성공사가 시작되어 인조 4년에 완공하였으며 이 때 통일신라 시대 주장성의 성돌을 활용하여 쌓았다고 한다. 이어서 성내에는 행궁을 비롯한 인화관, 연무관등이 들어서 수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앗다. 그러나 1907년 8월 일본군에 의하여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상당부분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주인 잃은 문화유산은 그대로 방치되어 어두운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성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문화유산들이 자리잡고 있고 넓은 분지에는 행궁과 관아, 일반인들의 거주지가 함께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유형의 문화재와 무형의 문화가 공존해 왔다. 남한산성은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가지를 인정받아 2014년 우리나라에서 11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지난번에는 산성로타리에서 국청사지,서문(右翼門),수어장대(守籞將臺),숭렬전(崇烈殿),영월정,행궁(行宮)으로 해서 산성로타리로 걸었다. 오늘은 산성로타리에서 북문(全勝門)->남한산성본성->동장대터->벌봉(蜂峰)->동장대터(東將臺址)->망월사->동문->산성로타리로 걸엇다.

 

행궁(行宮)(임금이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무는 별궁)

사진에 漢南樓란 한강 이남의 망루라는 뜻으로 남한산성 行宮의 정문으로 영조22년(1798)에

광주 유수 홍억이 건립한 누문(樓門)이다.

 

               터만남은 국청사지

 

                 숭렬전

 

                    수어장대(守禦將臺)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장대다.1751년 영조의 명으로 2층으로 지은 후 외부편액(건물

                명칭)을 '수어장대'라  하고 내부편액을 '무망루'라고 제작 설치하였다.

 

 

 

 

 

 

               동장대터(東將臺址)     제3암문(성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비밀 문)

               외동장대터(外東將臺址)

 

 

 

                벌봉(蜂峰)으로 가는 외각산성(무너진 성벽)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에게 점령당한 벌봉,패전의 원인이란다.

 

                무너진 외각산성

 

 

                망월사(望月寺)  

                산성 내 10개의 사찰중 가장 역사가 깊은 사찰로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한양에

                있었던 장의사를 허물고 그곳에 있던 불상과 금자화엄경,금솥등을 옮겨 창건하였다고 한다. 옛

                망월사는 일제 때 소실되었고, 현재 건물은 이후 그 위치 그자리에 복원된 것이다.    

 

 

                                 13층 진신사리석탑

 

 

      천주교순교성지:   남한산성은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박해 때마다 여러 곳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순교함으로서 "치명터"가 되었다.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1791)와

신유박해,기해박해,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300여명의 신자가 순교하게 되었다. 그 행적과 성명을 알

수 있는 순교자는 극히 적다. 이에 "순교자 현양비"를 세워 순교정신을 전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  

                                                      역사공부와 함께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    6,     19.

                                                                                해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