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 비움, 부활의 전주곡
버림, 비움, 부활의 전주곡
새의 뼈로 피리를 만들면 어떤 소리가 날까? 지난 3월 초, 한중 고대음악 공동 연구의 결과로 '뼈피리' 연주회가 열였다. 9천년전 중국 하남성 신석기 유적지에서 출토된 두루미 뼈로 만든 피리를 복원한 것인데 마치 단소 소리와 같은 청명한 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두루미 뼈로 만든 피리의 길이는 22㎠. 7개의 구멍을 이용해 반음까지 낼 수 있다고 한다.
나의 어린시절 할머니께서는 단추가 없어지면 문갑 한켠에서 철제상자를 꺼내셨다. 그 속에는 온갖 종류의 단추들이 가득했다. 평소 단추를 모아두셨다가 요긴할 때 쓰신 것이다. 단추 뿐만 아니다. 색색의 천 조각 등도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 두셨다가 필요한 순간에 꺼내시곤 하셨다. 할머니를 닮은 것일까? '리사이클'를 넘어 '업사이클'에 대한 관심이 커진 요즘, 더더욱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증상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 싶다. 요즈음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다른사람이 보기에는 하잘 것 없는 물건을 버리는 것을 어려워하고 어떤 물건을 버릴지 결정내리는 것을 못한다. 이런 경우 '저장강박장애증후군'이나 '저장강박증'에 해당할 수 있다.
부지런히 버리지 못하는 몹쓸 습관은 비단 물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컴퓨터와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시도 때도 없이 찍어대는 사진과 쉴새 없이 쌓이는 전자우편들, 수시로 내려받는 대용량 자료들로 저장공간은 아무리 넉넉해도 금새 모자란다. 사람들 사이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버려야 할 것들까지 차고차곡 ..쌓아두고 있지 않는가? 나의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많은 미움과 시기와 질투들을 가슴에 지닌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버려본 사람들은 안다. 비워본 사람들은 안다. 비운 뒤의 개운한 평화를.
최근 미국 건강지 '헬스'에 따를면, 건강을 위해서는 오래된 프라스틱 용기, 오래 신은 운동화, 오래 사용한 치솔과 화장품, 설거지용 스펀지 등을 과감히 버리라고 충고한다. 부활대축일을 앞두고 돌아본다. 나의 신앙생활 가운데 오래된 운동화나 치솔처럼 과감히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물론 아무리 오래되어도 살면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아침, 우리 가슴에 검푸른 피멍을 들인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새월호 참사의 상처와 아픔 같은 것. 지난 3월, 사도좌 정기 방문, 앗 리미나에서 한국 주교단과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첫 질문으로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물으셨다.우리 중 누가 그 물음에 선뜻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하느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바른 답을 당당하게 답할 수 없다면, 어찌 무심히 내던져버릴 수 있을까?
새의 뼈 속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내부가 텅 비어있다고 한다. 가벼워야만 하늘을 잘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날 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뼈를 이용해 아름다운 음악을 빚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정작 버려야할 것은 버리지 못하고 지켜야할 것은 내던져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새상을 향해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또한 아름다운 비상해야할 때, 바로 지금인데 말이다.
-방은영 마리안나(방송작가)-
2015. 4, 5.
천주교수원교구 '위로의 샘'에서
해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