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목적입니다.
인간이 목적입니다.
인간 사회가 용납하기 힘든 사건을 접할 때 그 사건의 용의자에게 '안면수심'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짐승의 마음으로 추악한 행위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실은 우리사회의 비극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이성을 통해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고 신앙을 통해 선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인간에게서 선사된 자유를 통해 옳은 것. 선하고 아름다움을 택하여 행할 때 인간은 더욱 인간다워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 존엄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생물학적 우월성이나 인간 스스로 부여한 자격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인간을 존엄하도록 만들어 준 타자는 가족이나 국가나 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을 사랑하신 하는님 때문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인간은 그분의 사랑 앞에서 존재 그 자체로 차별이나 구별없이 존엄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는 인간의 마음이 '짐승같은' 탐욕에 사로잡혀 힘과 권력의 관계를 갑과 을로 나누고 갑이 을 지배하려 합니다. 노동자와 고용자, 고객과 점원,임대인과 임차인, 우리가 알고 있는 약자들은 늘 재화와 권력을 더 많이 소유한 이들에게 지배당하며 명령을 들어야만 하고 폭행을 당해도 침묵을 강요당하는 이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지배하는 갑의 사회를 위해 을의 아품과 눈물을 외면하는 사회는 옳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병들어 있을 때 예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징표는 그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며 아파하는 이들의 상처를 싸매주시고 모두가 구원을 위해 회개하라는 '하느님 나라'의 선포였습니다. 정치와 경제가 끝없는 개발의 정점을 찍어야 인간이 행복해 질 것이라는 것은 '착각'입니다. 인간이 수단이 되고 도구가 되는 사회속의 인간은 결코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인간이 모인 사회가 마음을 모아 인간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인간이 인간을 무릎 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느님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겸손에 무릎을 꿇습니다. 까무러질 것 같이 끝없는 사랑에서 솟아나는 무한한 자비로움에 무릎을 꿇습니다. 당신의 사랑에 상처를 낸 인간을 사랑하셔서 스스로 상처를 내어 치유해 주시는 사랑에 무릎을 꿇습니다. 인간이 되시어 짐승같은 마음을 지닌 탐욕스런 인간에게 나약한 옥체를 내어주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무릎을 꿇으셨으니 인간은 서로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준 상처를 치유하는 분도 인간이 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 인간을 사랑 한다는 것은 내 안에서 나를 위해, 나 자신에 의해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2015, 2, 1.
-한만삼 신부(기산성당 주임)-
천주교수원교구 위로의 샘 에서
해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