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샘

또다시 페달을 밟기 위해

승범(承汎) 2014. 12. 11. 13:14

                                                           또다시 페달을 밟기 위해

 

      "앉아 있는 것은 건강에 좋지않다. 일어나 걸어라!"

       최근 들려오는 건강 관련 뉴스 가운데 이 말은 마치 나에게 하는 말인 듯 여겨진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서 꼼짝 않으니 운동부족인 건 너무도 당연한 일. 운동 해야지 마음만 먹었지 차일피일 미루다 또 한 해를 넘기겠다 싶어 베란다에 방치해 뒀던 자전거를 꺼내왔다. 녹도 슬고 바람도 빠지고.... 내친김에 끌고 나와 집 근처 자전거포를 찾았다. 자전거를 손보고 오는데 얼마나 운동 부족이면 그마저도 힘에 부쳤다. 가장 난 코스는 집앞의 오르막길. 차로 오갈 때는 미처 몰랐다. 그 길이 그렇게 가파르고 먼 길인 줄은. 한 5분의 1쯤 올라왔을까? 난 이미 지쳐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페달을 돌릴 엄두를 못 내고 자전거를 질질 끌고 올라오는데 할머니 한 분이 불러 세웠다.

 

      "보소 나 좀 도와주소!"

      할머니께선 유모차 한가득 짐을 싣고 올라오다 멈춰 서 계셨다. 너무 무거워서 유모차 바퀴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짐을 나눠 싣고 가줄 수 없겠느냐는 거다.'할머니 실은 제가 지금 이 자전거만 끌고 가기도 너무 버거워요.'라고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가타부타 대답할 겨를도 없이 할머니께선 이미 자전거 뒤에 짐을 한 보따리 옮겨 싣고 계셨다. 어린 손자가 혼자 집에서 기다리니 갈 길이 바쁘다시며.

 

      그런데 참 이상했다. 분명 난 앞으로 끌고 올라가는데, 할머니께서 쇳덩어리라도 실으신 걸까? 뭐가 이렇게 무거운 건지? 올라가다 말고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누군가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 당기는 것 같아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자전거를 쓰러뜨리지 않으려 애쓰며 겨우겨우 오르막길을 다 올라오니 할머니께선 벌써 도착해 기다리고 계셨다. 뒤에 실려 있던 짐을 번쩍 내리시는 걸 멍하니 보며 저 왜소한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오는 걸까?놀라고 있는데, 할머니께선 그런 나를 위아래로 훓어보시며 딱하다는 듯 혀를 차셨다. "쯧쯧쯧.. 아직 한창나이 인데! 운동 좀 하소!" 할머니 말씀 하나 그른 것 없어 네, 대답하며, 숨을 고르는데 문득, 안도현 시인의 글이 떠 올른다.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를 때 저기 저 고갯마루까지만 오르면 내리막 길도 있다고 생각하며 조금만 더 가 보자. 자기 자신을 달래면서 스스로를 때리며 페달을 밟는 발목에 한번 더 힘을 주는 것....텃밭에 심어놓은 마늘은 매운 냄새를 풍기지 않으나 도마에 놓고 다질 때 마침내 그 매운 냄새를 퍼뜨리고야마는 것처럼 누구든 죽음을 목전에 두면 지울 수 없는 향기와 냄새를 남긴다는 사실을 어느날 문득 알게 되는 것. 그리하여 나의 맨 마지막 향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는 것...(안도현의 '삶이란 무었닌가?중) 

 

      엎어진 김에 쉬어가랬다고 숨 고르는 김에 잠시 주저앉아 생각에 잠긴다. 할머니 말씀대로 무엇에 그리 쫒기느라 이리도 부실해졌는지? 삶도 신앙도 이렇게 허울만 좋았지, 쉬 지치고 힘에 부쳐 주저앉고 마는 '부실'상태는 아닌지? 위기의 도마에 놓여 다져질 때, 과연 나는 어떤 냄새를 퍼뜨리게 될지? 전례적으로 또 한해를 보내고 맞으며 나의 향기는 어떤 것일까, 곰곰히 생각에 잠기는데, 앙상하게 드러난 빈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초겨울 하늘이 참으로 파랬다.

 

                                                                                    - 방은영 마리안나(방송작가)-

 

                                                                                          2014, 12,  7.

                                                                                            천주교 수원교구 '위로의 샘'에서

                                                                                                                          해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