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세월호 선장'들
우리 사회의 '세월호 선장'들
뉴욕 택시는 거칠기로 유명하다. 난폭하고, 과속하고, 때론 요금도 속인다. 그런데 뉴욕 버스는 다르다. 손님이 타면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리고, 장애인 손님을 맞으면 그를 태우는데 십수분이 걸린다. 버스기사가 내려와 휠체어를 들어 올려 안전벨트에 단단히 고정한 뒤 확인하고 출발한다. 도쿄 버스도 똑 같다. 차선을 바꾸지 않고, 과속하지 않고, 급부레이크도 밟지 않는다. 그래서 걷는 게 빠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느리다. 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급출발로 넘어질 수 있다는 불안, 자리에 앉았다가 버스가 정류장을 그냥 통과해 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에서 벗어난다.
버스가 택시와 다른 것은 많은 사람을 태우기 때문이다. 대중의 안전을 책임지는 만큼 지켜야 하는 의무가 다르다. 뉴욕과 도쿄의 버스 운행은 꼼꼼한 매뉴얼로 짜여있다. 지키지 않으면 운전사는 해고된다.사실 자리에 앉기전에 버스가 출발 한다고 손님이 쓰러지는 경우는 드물다. 휠체어를 동여매지 않았다고 전복되는 일도 드물다. 그럼에도 매뉴얼을 지키는 것은 '最惡'을 항상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일본 여객회사 '마루에페리'는 이번에 사고가 난 세월호를 일본에서 18년 동안 사고 없이 운항했다. 이 회사의 '해난(海難)처리'매뉴얼을 보면 인명의 안전을 확보 하는 것, 사태를 낙관하지 않고 항상 '최악 상황'을 염두에 두고 조치를 강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항목에 올려놓고 있다. '선장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항목도 있다. 물론 앞의 두 항목을 몸에 익힌 선장을 말한다. 이번 사고를 주목하는 해외 전문가들은 '항상 최악을 생각하라'는 매뉴얼을 무시한 선장의 초기 낙관이 이번 비극을 불렀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실내에 있어라"고 지시했고, 지시를 따른 순진한 학생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세계은행이 한국을 '개발도상국'명단에서 뺀 것은 1997년이다. 국민소득이 1만딸러를 넘어서고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결과였다. 그해 가혹한 경제위기를 맞았지만, 결과적으로 위기는 자극제가 되었고 한국은 선진국으로 분류됐다. 빠른 도약이었다. 미숙한 사람은 성공신화를 통해 아픈 과걸를 잊는다. 수십명을 희생시킨 성수대교, 수백명을 희생시킨 삼풍백화점 자리에 선 번듯한 새 구조물을 보면서 교훈을 잊는 것이 그렇다. '세월호 선장'은 사람만 다를 뿐 20년전 성수대교 관리자, 삼풍백화점 경영자 그대로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 공중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 곳곳에 '세월호 선장'이 앉아 있다.
언감생심 승객을 위해 초개처럼 생명을 바치는 영웅적 선장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임금도, 대통령도 백성을 뒤에 두고 도망간 전력을 뻔히 아는 처지에 "선장 당신만은 승객과 운명을 함께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염치없다. 목숨까지 바라지 않으니 그저 각자 맡은 자리의 책임과 규정만 지켜달라는 것이다. 배가 가라앉으면 매뉴얼대로 생각해 내 아이를 피신시켜 달라는 것이다.
코피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선진국을 이렇게 간단히 정리했다. '모든 국민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유롭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곳.' 한국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2014, 4, 19.
조선일보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