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더 기대해서 외로운 것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더 기대해서 외로운 것
결혼하고 1년쯤 지나면 신혼도 끝나고 사랑의 감정도 조금은 식는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결혼한지 23년이 되었는데도 남편만 보면 가슴이 뛰고 긴장된다는 부인이 있습니다. 남편을 쳐다만 봐도 좋은데, 한편으로는 남편에게 계속 시경을 쓰는 자신이 싫고 괴롭다는 겁니다.
"남편이 취미로 찍은 코스모스, 들국화 사진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드렀습니다. 남편은 자기 생활을 하는데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하면서 부러움과 질투심이 밀려왔습니다. 남편이 돈을 가져가도 화가 안 나고 어디를 가도 화가 안 났는데, 지난 가을 남편이 찍은 꽃 사진을 보면서부터 이재 사랑의 끈을 놓고 싶어 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남편을 덜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지, 자유로운 마음을 갖게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단지 남편을 더 사랑하는게 싫어서 자유로워 지고 싶은 걸까요?
남에게 사랑 받으려고만 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워지지 않아서 항상 괴로움에서 허우적거립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사랑을 받으려면 머저 사랑을 해야하고 칭찬을 받으려면 먼저 칭찬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 사랑하고 자기가 먼저 칭찬하기 때문에 사랑 받고 칭찬 받습니다. 그러면 괴로움이 적고 즐거움이 크지만, 와전한 행복에 이르진 못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을 했는데도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완전한 행복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배푸는 마음만 내고 기대하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도와 도와주었는데 상대방이 나를 안 도와줄 때의 실망감과, 내가 상대방을 도와주지 않아서 상대방도 나를 안 도와줄 때의 실망감은 다릅니다. 내가 도와주고도 도움을 못받았을 때 실망감이 훨씬 더 큽니다. 내가 배푼만큼 받을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자기가 배푼만큼 대부분 받아서 괴로움이 적지만, 배풀고도 어쩌다 못 받는 경우에는 괴로움의 깊이가 배풀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 큽니다. 그래서 사랑은 미움의 씨앗이라고 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미워할 일도 없지만, 사랑하는 사이에 철천지원수도 생깁니다. 자기가 낳아 키워 준 부모, 친했던 친구, 사랑하고 좋아했던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바로 기대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사랑받는데서 행복을 찾는 겁니다. 사랑을 주면서 준 만큼 받으려는 거예요. 사랑을 주면 받을 확율은 높지만 혹시 못 받게 되었을 때는 '받지도 못할 사랑을 내가 무엇 때문에 줬나.' 하는 배신감에 괴로워지는 겁니다. 결국 사랑하던 마음이 미움이 되고 실망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은 무엇을 얻기위한 수단으로 사랑을 배풀 때 일어납니다.
남편이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거나 내가 남편을 좋아하는 거나 같은 겁니다. 그런데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남편은 괴롭지 않는데 남편을 좋아하는 나는 왜 괴로울까요. 남편은 코스모스에게 '내가 너를 좋아하니 너도 나를 좋아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남편을 좋아하니까 남편도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서 괴로운 거예요.
"내가 남편을 너무 좋아하는 게 문제예요. 이재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래요." 하는 것은 핵심을 놓친 겁니다. 내가 남편을 좋아하는 것은 남편이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것과 똑같은데, 나는 '내가 좋아하니 너도 나를 좋아해라'는 요구가 있고, 그 요구가 충족이 않되면 내가 실망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때문에 '나 혼자 이렇게 좋아해야 하나?'힘들어하는 겁니다.
남편을 그냥 좋아하면 돼요. 설악산에 다섯번, 여섯번 갔는데 설악산이 나 좋다는 얘기를 한번도 안 한다고 '이제 설악산 안 갈래'하는 얘기하고 똑같습니다.왜 내가 설악산에 매여 살아야 합니까.
남편은 '코스모스를 계속 좋아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안 하잖아요. 그처럼 남편을 좋아하되 남편에게 사랑을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놔야 문제가 풀립니다.
남편도 아내가 자기를 좋아하면 좋지만, 좀 지나치면 귀찮을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손주를 사랑한다고 밥상을 차려주고 "요것도 먹어봐라 저것도 먹어봐라."하면서 자꾸 입에 넣어주면 어떨까요. 할머니가 정성을 솓아준다는 걸 알지만, 갈 때마다 그러면 귀찮아서 나중에는 할머니와 밥을 같이 안 먹으려고 합니다.
남편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좋아서 할 뿐이지, 남편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은 것은 내가 좋아서 그럴뿐이니까, 상대에게 나처럼 똑같이 좋아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해야합니다.
' 내가 꽃을 좋아할 수 있어서 좋은 것처럼,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남편이 있어서 참 좋다. 남편한테 고맙다.'
이 부인은 남편 없으면 못 견딜 사람입니다. 남편 때문이 아니고, 좋아할 대상이 없어서예요. 남편이 어디 가고 없을 때 힘든 것도 남편을 내가 보고싶을 때 못 보기 때문에 힘든 겁니다. 그러니까 그만 좋아하겠다는 마음 대신 '좋아할 수 있는 당신이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감정이 더 절제가 되고 편안해 집니다.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 바다가 기분 좋은 걸까요, 내가 기분 좋은 걸까요. 내가 기분 좋은 겁니다. 내가 기분 좋은 것은 바다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산은 그냥 산이고 바다는 바다고 하늘은 하늘일 뿐입니다.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냥 바라는 것 없이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겁니다. 바라는 것 없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를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 집니다. 기대없이 좋아해 보세요, 바다를 사랑하듯이 산을 좋아하듯이.
2014, 2, 25.
법륜 스님의 '인생 수업'에서
해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