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용 기
근자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란 소설을 읽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1905년에 태어나 학교 공부를 제대로 못하고 그의 아버지가 러시아에서 사망 하고 어머니 마저 돌아 가시자 나이 열 살에 러시아에서 폭약회사에 취직한다. 그리고 24살 때 고향 스웨덴으로 돌아와 주물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34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국립연구소에서 웨이터로 일하게 된다.
그러다 그는 그 연구소에서 핵폭탄 연구에 참여하게 된다. 그때 트루먼과 친구가 된다. 그 후 그는 중국, 이란, 프랑스, 소련, 심지어는 북한까지 들어가 김일성도 만나 죽을 고비도 넘긴다. 그렇게 돌아 다니면서 때로는 핵폭탄 전문가로, 때로는 폭약 전문가로, 때로는 통역관으로, 때로는 첩자로 변신 하면서 황당무계한 일들을 저질러 가면서 세상을 놀라게 한다.
그러다가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와 양로원에서 기거 하다가 2005년 5월 2일 100회 생일을 맞게 되는데, 양로원에선 100회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외부의 관료들도 초청하고 홀에서는 파티 상을 차리고 있을 때 이 100세 노인은 창문을 넘어 도망치게 된다. 원장도 싫고 파티 자체도 싫어서였다.
슬리퍼를 신고 창문을 넘고 놀이터를 지나고 공원을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호주머니에는 돈도 몇 푼 되지 않는다. 그래서 돈만큼의 거리까지 표를 끊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중, 등에는‘네버 어게인’이라고 새겨진 청 자킷 차림의 건장한 젊은이가 여행용 큼직한 트렁크를 옆에 놓으면서 ‘똥 좀 싸고 올게’하고 봐 달라는 표정을 짓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버스가 왔길래 운전기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 큰 트렁크를 버스에 싣고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버스가 출발하는데 그 청년은 나타나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이 100세 노인이 트렁크의 주인 행세를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청년은 폭력조직의 행동 대원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이 100세 노인은 바퀴 달린 이 트렁크를 끌고 목적지도 없이 시골길로 한없이 걸었다. 그러던 중 한 70대 노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그의 집에서 하루 먹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저녁에 두 사람이 트렁크의 큼직하고 단단한 자물쇠를 열었다. 그 안에는 스웨덴 지패가 그득 들어 있었다. 자그마치 5,000만 크로나 였단다. 우리 돈으로 약 84억 정도란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이 트렁크를 들고 도망인지 여행인지 돌아다니면서 식구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대 여섯 명으로 늘어난다. 또 한편으로는 검찰, 경찰 수사대들과 쫓고 쫓기면서 두뇌경쟁을 벌린다. 심지어는 살인까지 한다. 그것도 건장한 조폭들을, 그래도 시신은 찾을 수 조차 없게 완벽하게 처리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젊었을 때 폭약 전문가로, 핵폭탄 전문가로 돌아 다닐 때처럼 황당무계하고 시한 폭탄 같은 100세 노인의 행적이 그려진다. 이 세계를 다 둘러보기엔 100년도 부족할 것 같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 100세 노인의 이런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는 우선 이 노인 행적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 용기에 우선 놀랬다. 100회 생일 축하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창문을 넘어 도망칠 수 있는 용기, 봐 달라고 해서 봐 주던 남의 그 큰 트렁크를 들고 도망갈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트렁크 안에 들어 있던 것이 어마어마한 금액의 돈이었다는 사실을 확인 하고도 신고는 커녕 도망인지 여행인지 돌아 다닐 수 있는 용기, 결과로는 담당하던 베테랑 급 검사가 ‘100세 노인 실종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체포영장을 철회한다’고 발표하고 마는데, 일을 이렇게 종결 지울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만들어 간 것도 이 100세 노인팀의 치밀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한 처리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이 또한 100세 노인팀의 지혜와 어리석은 용기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후 검사와 마주하여 허들겁스럽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바보스럽게, 때로는 신중하게, 때로는 혼란스럽게 얘기하는 100세 노인의 지혜라 할까, 용기라 할까, 이것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어린 시절부터 폭약이나 핵물질 같은 위험물질을 만지면서 얻은 모험심에서 얻은 용기일까, 여러 나라에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일 하면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냈다는 성공 사례에서 얻은 용기일까, 아니면 어려운 환경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성공적으로 살아 왔다는 자부심에서 생긴 용기일까, 아니면 무식에서 나온 용기일까, 아니면 자식이 없어 부담없는 환경에서 얻은 용기일까, 아마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냈다는 자부심에서 나온 용기가 아닐까 싶다.
결론적으로 나는 머릿속에 들어 있는 많은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험이 따르더라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용기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배우고 싶다. 물론 그 내용이 정의롭고 바른 길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2013, 8, 20.
해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