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샘

넝쿨당

승범(承汎) 2012. 8. 21. 00:05

                                                           넝   쿨    당      

     신학생들이 떠난 못자리는 산사의 밤처럼  고요합니다. 학기중 저녁이면 학생 면담 내지는 성사로 분주했는데, 방학에는 여유로운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주말에 가끔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넝쿨당)'입니다. 한여인이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꿈꾸지만, 예상치 못했던 시댁과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과   아픔, 웃음을 전해주는 드라마입니다. 여러가지 상황은 다르지만, 사제직을 준비하는 신학생들의 못자리 삶도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멋진 사제로 살고싶은 꿈을 꾸지만, 현실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내적인 싸움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때로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형제들과의 어려움 때문에, 또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약해져서, 학업과 분주한 학교 일정에 지쳐 힘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교 삶이 기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서로 일으켜 주며,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넝쿨당"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 1학기 말 시험이 끝나면 학년별 프로그램을 갖습니다. 봉사활동, 노동, 산행, 성지 순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합니다. 학년에 맞는 프로그램을 통해 신학생들은 교구 사제의 영성(친교와 일치), 사제직에 대한 열정, 사회성(관계성), 상황 판단 능력을 몸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제가 담임을 맡은 3학년은 2박3일간 성 라자로 마을에서 풀도 뽑고 어르신들과 함께 떼제 기도와 미사를 봉행 하였습니다. 신학생들은 시험을 끝내고 지친 상태였지만 온 정성을 다해 주님께 기도하고 찬양을 드렸습니다.특히 신학생 시절 담임 신부님과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 제자가 담임 신부가 되어 3세대가 봉헌하는 미사는 신자분들에게도 잔잔한 기쁨을 주었습니다. 간간히 눈물을 흘리는 신학생들을 바라보니, 한 학기를 보낸 수고와 아픔, 감사의 정이 느껴져 흐뭇했습니다. 원장신부님께서는 삼겹살 파티로 더위에 수고한(?) 신학생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오랜만에 신학생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아직은 농사일이 낯설고 더위에 힘들었지만, 노동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병에 대한 이해가 없어, 걱정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나병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평화의 인사를 기쁘게 나누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짧은 만남이지만 이 작은 체험이 이웃들의 기쁨과 아픔을 바라보며 함께 웃고 아파할 수있는 사제가 되는 밑거름이 되길 소원해 봅니다.

 

     신학생들이 긴 여름방학을 마치고 못자리로 돌아 왔습니다. 학교는 신학생들이 떠난 기간에 노후한 건물들을 보수하고, 주인을 맞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풀로 무성했던 운동장과 고요했던 교정은 활기로 넘쳐납니다. 성당에 울려 퍼지는 학생들의 기도 소리는 이번 학기를 시작하는 그들의 열정을 느끼게해 줍니다. 주님께 작은 손을 모아 기도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성인 사제로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또한 신학생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시는 모든 형제 자메님들께 당신의 축복을 내려주소서' 여름의 끝자락! 항상 영.육간 건강하시고 여러분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풍성히 내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수원주보 에서    유주성(블라시오)신부  (수원 카톨릭대학교 교수)

                                                                                                                       해 봉   옮김